신년 연휴에 지난해 한국서 빅 히트한 2편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말아톤’을 비디오로 봤다. 정윤철이 감독하고 조승우와 김미숙이 나오는 ‘말아톤’은 달리기를 잘하는 20세의 자폐증자 아들과 그를 정성껏 돌보는 어머니에 관한 멜로물. 연기도 좋고 최루용 영화치고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지 않아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지난해 최고의 흥행수입을 낸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은 어수선한 습작품 수준의 영화였다. 광녀로 나온 강혜정의 헤어스타일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견강부회식 플롯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엉성하다.
이 영화는 6.25사변이 터지던 해 9월 외부와 단절된 강원도의 산골마을에 흘러 들어온 국군(2명)과 인민군(3명) 그리고 미군(1명)의 이야기다. 이들이 에덴동산 거주자들과도 같은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적들이 한 형제가 된다는 일종의 반전 드라마다. 그리고 군인들은 주민들의 인정과 순수성에 감동돼 합심하여 마을을 폭격하려고 출격한 미군기들을 격추시키고 모두 산화한다.
그런데 나는 국군과 인민군이 함께 중화기로 미 폭격기를 공격하면서 환호하는 장면을 보다가 아연실색했다. 인민군이야 미군이 적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국군 장교와 하사관이 전시에 우군기를 격추시키면서 마치 적기라도 떨어뜨리듯 신이나 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치 환상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이거 혹시 요즘 한국서 유행하는 반미감정의 표시는 아니겠지).
환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박 감독은 영화에서 환상과 상징을 남용하고 있다. 광녀와 툭하면 출몰하는 하얀 나비들은 순진과 평화를 뜻하는 것 같은데 너무 빤한 상징은 이미 상징이 아니다.
내용도 감상적이요 설익은 데다가 연기와 특수효과도 불량한 이 영화가 2005년도 한국을 대표하는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를 않는다. 선정인들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이 영화는 5일 개막된 팜스프링스 영화제에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등과 함께 출품됐다.
‘복수 시리즈 3부작’으로 국제적 컬트영화 감독의 자리에 오른 박찬욱의 영화는 격찬하는 비평가들과 혐오하는 비평가들의 선이 명확히 그어져 있다. 에인트-잇-쿨-뉴스.컴의 해리 노울스는 ‘복수 시리즈’ 첫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을 2002년도 베스트로 뽑았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비평가 오웬 글라이버맨은 박 감독을 “백정의 두뇌를 가진 자”라 불렀고 뉴욕타임스의 마놀라 다기스는 “눈에는 눈 식의 박 감독의 영화가 구역질이 난다”고 독한 소리를 했다. 나는 이 두 사람 편이다.
내가 그의 영화를 싫어하는 한 이유는 그의 폭력이 폭력을 위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박찬욱의 무자비한 폭력은 많은 경우 영화 흐름과 관계없는 막가파식 폭력이어서 불쾌하다.
박 감독의 ‘복수 시리즈’ 두 번째 영화인 ‘올드 보이’가 2004년도 칸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 비평가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 극악무도하게 잔인하고 새디스틱한 영화가 상을 받은 것은 폭력영화의 대부처럼 된 쿠엔틴 타란티노 심사위원장이 이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자자했었다.
‘복수 3부작’은 모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직하고 잔혹하고 또 피투성이다. 박찬욱은 폭력에 영화예술의 탈을 씌워 행패를 부리고 있다. 도대체 그의 과도한 폭력의 이유는 무엇인가. 마놀라는 “박은 어쩌면 폭력의 무용성에 관해 무언가 말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크린의 살육에서 나온 그 어떤 의미도 그가 폭력 묘사에서 느끼는 쾌감에 의해 상쇄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복수 시리즈’ 마지막 편 ‘친절한 금자씨’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금자가 출옥하자마자 식칼로 손가락부터 자르고 복수 행각에 나서는 피바다 잔혹극이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얘기가 점점 더 논리성을 잃고 피의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이 영화의 터무니없는 폭력은 가히 코미디라 부를 만한데 박 감독의 방종한 폭력은 “내 배 째라”는 식의 심술에 지나지 않는다.
박 감독은 생긴 것도 그렇고 분명히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재주를 가학성 자기 만족을 위해 쓰면서 아울러 팬들에게 아첨하고 있다. ‘사이코’ 김기덕이 최근 변신한 것처럼 박찬욱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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