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420여편의 영화를 봤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가 한해에 본 영화들 중 베스트 10편을 고르느라 애를 먹는다. 괜찮은 영화들은 적지 않지만 내 심금을 울린 것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리웃의 메이저들의 영화보다 인디(독립)영화나 외국어 영화를 더 좋아한다. 특히 나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나처럼 영화등 유럽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미국사람들은 유로 트래쉬(유로 쓰레기)라고 조롱한다.
내가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은 영화를 예술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영화를 오락으로 여기는 할리웃의 작품과 프랑스(더 나아가 유럽) 영화간에는 문화적 심도의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신문과 자매회사인 라디오서울을 통해 영화를 비평하고 추천할 때 인디영화나 유럽영화를 더 적극적으로 권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극히 제한됐고 또 상영한다 해도 개봉 얼마 후 막을 내린다는 점.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미국인들이 이런 영화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심각한 영화를 좋아해 직장 동료들로부터 “박흥진이 좋아하는 영화는 재미가 없고, 박흥진이 나쁘다는 영화가 진짜 재미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내가 무조건 메이저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든 영화들인 ‘킹 콩’이나 ‘뮌헨’ 등은 나도 재미있게 봤고 또 적극 추천했다.
나의 올 베스트 텐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그 중 5편은 외국어 영화이고, 4편은 인디영화(사실은 메이저의 자회사) 그리고 나머지 1편만이 메이저 것이다.
불치의 로맨틱인 홍콩의 왕 카-와이가 감독한 ‘2046’은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답고 향수감에 젖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다. 창녀로 나온 지이 장이 고혹적인데 이 영화와 역시 그녀가 나온 ‘게이샤의 추억’을 비교해 보면 왕 감독과 로브 마샬 감독의 내면이나 분위기 묘사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DVD.
이탈리아 영화 ‘청춘의 황금기’(Best of Youth)은 원래 6시간짜리 TV 미니시리즈다. 60년대부터 40년간 두 형제와 그들의 가족과 친구와 연인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회, 문화, 정치적 변화를 그린 장편소설 같은 작품. 6시간이 오히려 모자라는 느낌이다.
소위 ‘게이 웨스턴’이라 불리는 ‘브로크백 산’(Brokeback Mountain)은 두 카우보이간의 수십 년간에 걸친 못 이룰 사랑을 아름답고 비극적으로 그린 수려한 영화다. 앙리 감독 등 여러 부문에서 내년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현재 상영중.
러셀 크로우가 프로박서로 나오는 실화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은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드라마인데 개봉시기(6월)를 잘못 선정, 흥행에 실패했다. DVD.
‘항구적인 정원사’(Constant Gardner)는 서구의 거대 제약회사의 비리를 폭로한 기업 스릴러이자 사랑의 이야기. 내용, 연기, 촬영이 모두 훌륭하다. 현재 상영중.
프랑스 영화 ‘숨겨진’(Hidden, 프랑스어 제목 Cache)은 죄의식과 양심의 각성을 상징적으로 그린 뛰어난 심리 스릴러. 보고 난 뒤에도 계속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현재 상영중.
캐나다 감독 데이빗 크로넌버그의 ‘폭력의 역사’(History of Violence)는 폭력의 뜻과 갱생과 속죄와 구원을 강렬한 폭력과 말끔한 영상미 그리고 간결한 내용 속에 담은 재미와 의미를 함께 지닌 드라마.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현재 상영중.
뉴욕의 가난하고 불우한 공립 초등학생들이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볼룸댄스를 배우는 기록영화 ‘뜨거운 볼룸’(Mad Hot Ballroom)은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DVD.
내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짙은 애착을 느낀 영화가 프랑스 흑백영화 ‘지금 당장’(Right Now·사진)이다. 감각적 영상미 속에 저돌적인 프랑스 처녀와 아랍계 은행강도의 사랑과 도피와 죽음의 이야기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를 연상케 한다. 운명적으로 로맨틱해 오금이 저리다.
중국 영화 ‘세계’(The World)는 급진적 세계화 속에 고립되고 누락된 고독한 젊은이들의 사회 비판적 휴먼 스토리다.
나는 비평가들을 위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데 서로 얼굴을 아는 비평가들 열댓 명을 불러놓고 하는 시사회에서마저 감시를 당하며 영화를 본다. 해적판 촬영을 적발한다고 감시원이 적외선 망원경으로 시사회 내내 우리를 감시한다. 빅 브라더가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영화 보기 힘드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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