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 32명은 지난 10일 부회장 레일 로웬스틴 집에 모여 2005년도에 나온 영화들을 놓고 각 부문 베스트를 뽑았다. 12시부터 시작해 장장 4시간의 투표과정은 스릴마저 있는데 자기가 미는 작품이나 배우가 베스트로 뽑히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회원들의 모습이 마치 아이들 같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영화사들이 우리를 귀족 대우하는 것이 바로 이 베스트 선정 얼마전이다.
투표는 헨리 쉬핸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먼저 회원들이 해당부문 후보를 질서 없이 거명한 뒤 투표에 들어가 각자가 선호 순서대로 3점부터 1점까지 세 후보를 지정한다 이 점수를 통산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가 최종 선정의 대상이 된다.
이 날 최우수 작품으로는 두 카우보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수려하게 그린 ‘브로크백산’(Brokeback Mountain)이 뽑혔다. 최우수 감독으로는 ‘브로크백산’의 앙리가 선정됐는데 우리는 지난 2000년 앙리의 ‘와호장룡’을 최우수 작품으로 뽑고도 감독상은 스티븐 소더버그(트래픽)에게 준 바 있어 이번에 과거의 미안함(?)을 값은 셈이다.
유니버설의 자회사인 포커스 작품인 ‘브로크백산’은 뉴욕 영화비평가 서클도 베스트로 뽑았고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도 7개 부문이나 올라 내년에 오스카를 거머쥘 확률이 0순위다.
해마다 12월 수상시즌 들어 제일 먼저 각 부문 베스트를 발표하는 단체는 150명의 직업영화인, 학자, 교육자 및 학생 등으로 구성된 전미비평위. 그런데 올해는 내부 내란이 인데다 후보작 리스트 선정 실수로 지난 11일에야 발표, LAFCA가 제일 먼저 베스트를 발표했다.
이번 베스트 선정에서 가장 많이 뽑힌 것이 모두 3개 부문서 최고로 인정받은 ‘카포티’(Capote). 캔사스 농촌 일가 살해범으로 사형 당한 2명의 행적을 취재, 책으로 써낸 트루만 카포티의 이야기다. 카포티 역을 귀신도 놀라게 잘한 필립 시모어 하프만이 남자 주연상을, 그의 보조자인 작가로 나온 캐서린 키너(이 영화 외에 ‘40세 숫총각’ ‘통역사’ ‘잭과 로즈의 발라드’ 등을 합해)가 여자 조연상을 그리고 각본을 쓴 댄 푸터맨이 베스트로 뽑혔다. 그런데 각본상은 보기 드물게 노아 바움박이 쓴 ‘오징어와 고래’(The Squid and the Whale)와 동점을 이뤄 회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오징어와 고래’는 두 아들을 둔 맨해턴 작가 부부의 이혼과 그 후유증을 다룬 드라마다.
이번 베스트 선정에서 나뿐 아니라 여러 동료회원들이 입을 쩍 벌린 부문이 여자 주연. 최소품이라 불러야 할 ‘뼛속까지’(Down to the Bone)에서 약물중독자로 나온 베라 파미가가 뽑혔는데 나는 이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이 영화는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둔 약물중독자 수퍼마켓 캐시어가 갱생하려고 몸부림치는 사실적인 얘기로 파미가의 연기는 보는 사람의 가슴에 통증을 일으킬 만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LA와 뉴욕 등에서 단지 2주만 상영돼 총 1만9,723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막을 내렸다. 비평가 빼고는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영화다. 우리는 지난 1999년 ‘남자들은 울지 않는다’에 주연한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힐라리 스왱크를 그 해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아 그 후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바 있다. 이번에 파미가를 베스트로 뽑은 동료회원들은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골라냈다는 듯이 자랑스러워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뮌헨’ ‘킹 콩’ 및 ‘게이샤의 추억’등 연말용 스튜디오 대작을 외면하고 작은 독립영화(인디스)들에게 상을 골고루 배분했다.
남자 조연상은 범죄 스릴러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 말미에 갱 두목으로 잠깐 나와 기차게 코믹한 사이코 연기를 한 베테런 윌리엄 허트에게 돌아갔다. 촬영상은 CBS-TV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 대 맥카시의 대결을 그린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이 음악상은 하야오 미야자키의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Howl’s Moving Castle)이 각기 받게 됐다. 그리고 최우수 프로덕션 디자인은 왕 카-와이의 ‘2046’이 최우수 외국어 영화로는 프랑스영화 ‘숨겨진’(Cache)이 각기 뽑혔다. 또 만화영화상은 영국서 만든 ‘월리스와 그로밋: 웨어-래빗의 저주’(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이, 기록영화상은 ‘그리즐리 맨’(Grizzly Man)이 그리고 신인상은 ‘허슬 앤 플로우’(Hustle and Flow) 등에 나온 흑인 배우 테렌스 하워드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감원바람이 분 LA타임스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동료회원 케빈 토마스를 특별상 수상자로 뽑았다. 그가 40여년간 LA 영화문화에 기여한 공을 기리기 위해서다.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힌 리처드 위드마크가 건강 때문에 시상식에 못오는게 참으로 유감이다. 제31회 시상식은 내년 1월17일 센추리시티의 파크 하이야트 호텔서 열린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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