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만 해도 LA의 크렌셔 블러버드 남쪽에 고쿠사이라는 일본 영화 전용관이 있었다. 당시 막 미국에 온 나는 말로만 듣던 사무라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 극장을 자주 찾아갔었다.
여기서 본 영화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찐빵처럼 생긴 카추 신타로가 나오는 ‘자토이치’(Zatoich) 시리즈다. 자토이치는 나무 지팡이 속에 검을 넣고 다니는 거지꼴의 눈먼 안마사로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며 안마를 해주고 끼니를 때운다. 그는 명검객이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다가도 불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울 때면 지팡이 속의 검을 뽑아 삽시간에 적을 벤다. 눈알이 돌아가는 검술 솜씨다. ‘자토이치’시리즈는 홈 비전 엔터테인먼트(HVE)가 DVD로 내놓았다. 자토이치 얘기는 2003년 일본의 팔방미인 영화인 타케시 키타노가 주연하고 감독해 재생돼 큰 인기를 모았었다.
자토이치는 일종의 로닌(낭인)이다. 로닌은 특정 상전을 섬기지 않는 떠돌이 사무라이다. 로닌은 산간벽지를 전전하며 동네 분쟁에 말려들거나 개인적 복수를 하는 고독한 늑대다.
통칭 사무라이 영화는 일본에서는 검술영화를 뜻하는 참바라 영화라고 부른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수가 세운 에도(도쿄) 정권시대(1603~ 1867) 쇼군 밑에서 제1계급의 호사와 세력을 누렸던 무인들. 이들은 무술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일례로 다도)에도 심취했는데 엄격한 도덕성과 충성심과 규율에 매여 살았다.
이렇게 틀에 박힌 사무라이보다 모실 임자 없이 떠돌며 체제에 저항하는 로닌이 극적으로는 훨씬 흥미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많은 사무라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로닌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아키라 쿠로사와의 ‘7인의 사무라이’다.
로닌은 미 웨스턴의 고독한 건맨의 외국인 사촌이다. 그래서 미국 감독들은 남의 영화를 빌려다 제 것으로 만들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은 ‘7인의 사무라이’의 변형이고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도 쿠로사와의 ‘숨겨진 성채’(The Hidden Fortress)가 원전이다. 또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기 영화 ‘킬 빌’은 ‘자토이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는 역시 쿠로사와의 ‘요짐보’(Yojimbo)가 원작이다.
일본의 갱스터 영화인 야쿠자 영화도 사무라이 영화의 신식판이라고 하겠는데 때로 일본 형사 영화에서는 야쿠자를 쫓는 형사들이 사무라이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무라이 영화는 일본 영화 초창기부터 만들어졌지만 이 장르가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붐을 이룬 것은 1960년대다. 전후부터 형성되어 온 체제에 대한 불신과 개인주의에 대한 열망이 60년대 들어 일본을 뒤흔든 정치·문화적 격변의 물결을 타고 표현된 매체가 사무라이 영화였다.
일본 영화인들은 전통적인 검술 영화속의 영웅적 사무라이 대신 권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개인적 명예는 고수하는 새로운 주인공인 고독한 반 영웅을 창조해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했다.
미국에서 사무라이 영화가 새삼 인기를 얻게된 데는 ‘킬 빌’의 영향이 크다. 미국 사람들은 역동적인 힘과 발레 같은 우아함 그리고 잔혹한 무력이 함께 뭉뚱그러지면서 선과 악이 맞서는 사무라이 영화에 매료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케이블 TV IFC는 매주 토요일 사무라이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고 흘러간 사무라이 걸작 영화들이 계속해 DVD로 출반되고 있다. 최근 크라이티리언(Criterion)이 출시한 박스세트 ‘모반자 사무라이: 60년대 검술 클래식’(Rebel Samurai: Sixties Swordplay Classics)은 4편의 걸작 사무라이 영화를 모은 것이다.
‘사무라이 반역’(Samurai Rebellion)은 아들의 아내를 빼앗아 가려는 영주에게 반항하는 가신(토시로 미후네)의 얘기인데 미후네는 사무라이 영화의 명우로 황소 눈알을 한 타추야 나카다이와 한판 붙는다(사진). 역시 나카다이가 나오는 ‘킬!’(Kill!)은 액션 코미디이고 ‘짐승의 검’(Sword of the Beast)은 전설적 사무라이 영화 감독 히데오 고샤의 복수극. 이들과 함께 마사히로 시노다 감독의 닌자 칼부림극 ‘사무라이 스파이’(Samurai Spy)가 포함됐다.
역시 크라이티리언이 출반한 장-피에르 멜빌이 감독하고 중절모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매력적인 알랭 들롱이 주연한 ‘사무라이’(Le Samourai)는 프랑스판 사무라이 영화. 자기를 배신한 두목에게 복수를 하는 과묵한 킬러 들롱의 모습이 쿨한 실존적 범죄영화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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