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다(죽은 배우 몬고메리 클리프트는 나의 우상이지만). 작은 체구안에서 터져 나오지 못해 몸부림을 치는 격정과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끙끙대며 마음을 앓는 듯한 표정이 아찔하도록 강렬한 배우다.
지금은 나이가 64세가 되어 얼굴이 고목껍질처럼 됐지만 파치노는 젊었을 때 정말 예뻤다. 그런 미모를 지닌 파치노가 레이크타호 별장에서 하수인에게 배신자인 형 프레도를 죽이라고 지시한 뒤 황혼이 저무는 호수를 배경으로 응접실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던 모습(대부Ⅱ)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살인의 비정미가 파르스름 했다.
파치노를 얼마전 직접봤다. 아메리칸 시네마테크의 연례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혀 지난달 21일 베벌리 힐튼호텔서 만찬을 겸한 시상식이 있었다. 파치노를 직접 보고 또 그의 생애를 축하해 주려고 검은색의 정장을 하고 갔다. 하오 6시30분부터 칵테일이 시작됐는데 공짜로 JB 온 더 록스를 거푸 두잔 마신 뒤 취기가 감도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턱시도에 보타이를 한 신사들과 온갖 장식을 한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숙녀들이 떠들고들 있었다. 제법 할리웃 기분이 났다.
파치노는 이날 브루스 윌리스(그는 파치노 전에 이 상을 받았다)가 건네주는 상패를 받고 감격해 어쩔 줄 몰라했다. 작은 메모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그는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경우 뭔가 말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난 그저 감동에 겨울뿐”이라고 말했다. 아주 겸손 했다.
파치노와 공연한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 그를 치하했다. ‘대부’에서 파치노의 맏형으로 나온 제임스 칸은 “참 옛날에 파치노는 예뻤는데 이제 그도 늙었다”면서 “패라마운트사의 간부들은 신출내기 파치노를 ‘대부’에 쓰는 것을 결사 반대했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고집에 손을 들고 말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칸은 이어 “파치노 처럼 F자 상소리를 잘하는 배우도 없을 것”(‘스카페이스’를 보면 안다)이라고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파치노도 이날 ‘대부’를 회상하며 코폴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또 영상 메시지를 보내온 메릴 스트립은 “나는 지금도 배우로서의 당신을 경외한다”면서 “당신보다 더 치열한 배우는 없다”고 찬양했다. 브루스 윌리스는 “‘대부’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이들 외에도 앤디 가르시아, 키아누 리브스, 샬리즈 테론, 에드 해리스, 존 보이트 등이 나와 파치노를 축하했다.
파치노는 계속되는 치하에 눈물을 글썽이며 “배우라는 것의 의미는 당신이 그것을 하고자 원하는데 달려 있다. 이런 소망은 사람을 먼 곳에까지 데려다준다”면서 “연기는 나를 전세계를 돌아 매우 먼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가슴속에 있는 것을 더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난 늘 각본가가 필요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와 폭소를 얻어냈다.
파치노는 오스카와 에미와 토니와 오비 등 무대와 TV와 스크린의 상을 모두 탄 연기파다. 그보다 더 자기 역을 완성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는 배우도 없다. 이탈리아 시실리아계인 파치노는 뉴욕의 사우스 브롱스서 성장했다. 학교를 싫어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연기에 심취해 맨해턴의 공연예술고를 다녔다. 17세 때 중퇴, 극장 안내원과 배달부 등 막일을 했다.
막일로 번 돈으로 연기학교에 입학, 영국 태생의 연기파 배우 찰스 로턴의 지도를 받았다. 26세때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2년후 ‘인디언은 브롱스를 원한다’로 오비상을, 그로부터 3년후 ‘호랑이는 넥타이를 매는가?’로 토니상을 탔다.
파치노는 무대에서 영화로 옮겨 ‘니들팍의 공포’(1971)에서 마약중독자로 나와 명연기를 보여줬다. 이 연기를 본 코폴라가 무명의 파치노를 ‘대부’에 썼는데 그 다음은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사실. 파치노는 8번째 수상 후보에 오른 ‘여인의 향기’(1992)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는데 사실 이것은 동정상이나 다름없다. ‘대부Ⅱ’로 받았어야 했다. 파치노는 지금도 종종 자기 고향인 무대로 돌아가 연기를 하는데 지난해는 HBO 미니시리즈 ‘미국의 천사’로 에미상을 받았다다.
삶의 황혼기에 들어선 그에게서 노염을 사르는 연기를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자식들에게서 버림받고 미쳐버린 리어왕이 딱 맞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