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가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서 청계천까지 되살려낸 나의 조국 한국을 떠나 미국 땅에까지 와 살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까닭 중 하나는 6.25사변통에는 양키의 리글리 검과 허쉬 바 초컬릿 그리고 조금 커서는 할리웃의 영화와 히트 팝송에 의해 나도 모르는 새 내 내면에 미국에 대한 동경이 싹을 터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큰 이유는 언론자유를 비롯해 여타의 자유를 군화로 짓밟는 전두환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내게 커다란 영향을 준 할리웃 영화와 히트 팝의 제조지인 미국에 온 뒤로 나는 내가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에 듣고 좋아했던 팝송을 부른 가수들의 공연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미국의 팝송들은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고교시절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적어 외우며 따라 부르곤 했었다. 이 덕택에 대학 입시의 영작시험 때 폴 앵카와 레이 찰스가 모두 부른 ‘유어 치팅 하트’의 가사를 인용해 적을 수가 있었다.
미국 와서 내가 직접 공연장에서 만난 가수들은 레이 찰스, 폴 앵카, 닐 세디카, 탐 존스, 알 마티노, 자니 마티스, 패티 페이지, 글렌 캠벨, 피터 폴 & 메리, 척 베리, 진 피트니, 닐 다이아몬드, 앤 머리, 고기 그랜트 그리고 피아니스트 로저 윌리엄스와 샹송가수 샤를르 아즈나부르 등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있은 팻 분의 쇼를 보러 갔었다. 팻 분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노래가 그가 동명영화에 나왔던 ‘에프릴 러브’(1957). 하얀 옷을 입고 무대에 나온 분(다리를 약간 절었다)은 이 날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한 셜리 존스와 키스 한번 못했다고 투덜대 청중을 웃겼다.
정통 올 아메리칸 보이의 이미지를 지닌 분의 목소리는 약간 비음에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조류가 왔다간 백사장처럼 부드럽다. 그는 이런 이미지와 음성 때문에 1950년대 백인 틴에이저들의 우상으로 사랑을 받았는데 생애 통산 38개의 탑40를 기록하면서 수천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분은 이런 단정한 모습과 온순하고 고운 노래들 때문에 당시 골반을 마구 비틀어대며 ‘악마의 노래’ 로큰롤을 부르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혐오하던 틴에이저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를 모았었다.
테네시 내슈빌에서 자란 분은 역시 테네시의 멤피스에서 활동한 프레슬리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분은 이 날 ‘돈 포비드 미’를 부르기 전 작곡가가 이 노래를 자기와 프레슬리에게 모두 보냈는데 프레슬리는 그 걸 게을리 취급하다 내게 히트곡을 빼앗겼다고 으스댔다.
무대 위에 걸린 스크린을 통해 분이 나온 영화와 TV 쇼 장면 등이 투영되면서 시작된 이 날 쇼에서 분은 “아마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 쇼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팻츠 도미노의 노래를 편곡한 ‘에인 댓 어 쉐임’으로 쇼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전부 내 노래만 부르겠다”고 말해 청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 날 자신의 히트곡들인 ‘웬 아이 로스트 마이 베이비’ ‘프렌들리 퍼수에이전’(영화 ‘우정 있는 설복’의 주제곡), ‘버나딘’(분의 동명 데뷔영화 주제곡), ‘스타 더스트’ ‘스피디 곤잘레스’ ‘엑소더스’(동명영화 주제곡으로 분이 작사), ‘무디 리버’ 및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를 불러 날 옛날 속으로 되돌려 보내주었다. 특히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의 휘파람 부분에서는 청중들에게 함께 휘파람을 불자고해 나도 불었다. 추억이라는 감상적 베일이 내 마음을 덮어 내렸다.
나는 그의 노래 중 ‘아일 비 홈’을 제일 좋아한다. 중간에 독백이 있는 이 노래는 1956년에 히트한 곡. 분은 당시 한국전 때문에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그의 미국 내 가족들이 많이 신청했던 곡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노래는 외국에 나가 있는 군인이 고국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이다.
‘아일 비 홈 마이 달링/플리즈 웨잇 포 미’하면서 시작되는 노래는 ‘나를 기다려 주오/ 달빛 속에 걸어 님을 집까지 데려다 주리다/ 다시 한번 우리의 사랑은 자유로워질 거예요’라며 끝이 난다. 매우 아름다운 노래다.
이날 서글펐던 것은 나이 탓인지 분(71)의 그 옛날 아름답던 음성이 많이 거칠어졌다는 점. 세월은 모든아름다운 것을 앗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슬펐다.
이제 팻 분의 노래를 직접 들었으니 브렌다 리와 토니 베넷과 앤디 윌리엄스만 보면 나의 추억의 가수들을 대충 다 만나는 셈이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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