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여동생과 샌타모니카에 있는 에어로 극장에서 상영되는 최신 이탈리아 영화제중 한 작품인 ‘범죄 소설’(Crime Novel)을 보러 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동생이 “오빠 저거 ‘황야의 무법자’ 음악이지”하면서 “대학생 때 명보극장에서 저 영화를 보면서 야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며 너무나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라고 말했다.
휘파람과 합창과 기타 그리고 말발굽소리와 채찍소리를 뒤섞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기이할 정도로 새로웠던 ‘황야의 무법자’를 나도 대학생 때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본 느낌이 내 동생과 똑같았다. ‘야 이런 영화도 있구나’하는 경이감이었다.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한번 본뒤 며칠 있다 또 가서 본 기억이 난다.
1960년대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재해석하면서 부활시키는 계기가 된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는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때까지만 해도 TV 배우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해 스페인서 찍었다.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이 영화의 원작은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토시로 미후네가 나온 흑백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Yojimbo·1961)이다.
레오네는 자기 영화의 주연배우를 찾던 중 웨스턴 TV 시리즈 ‘로하이드’의 제91회 에피소드 ‘블랙 십 사건’에 나온 이스트우드를 보고 그의 게으름과 무심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뽑았다고 한다.
위가 납작한 카우보이 모자에 판초를 입고 시가릴로를 입 한쪽 끝에 문 채 가느다랗게 뜬 눈을 깜빡대면서 나쁜 놈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무명씨 역으로 당시 34세였던 이스트우드는 대뜸 수퍼스타의 문턱에 올랐다. 영화가 빅히트를 하면서 제2편(For a Few Dollars More)과 제3편 ‘선한 자, 악한 자 그리고 추한 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가 나왔다. 레오네와 이스트우드와 모리코네의 이름은 이 영화들로 인해 변종 웨스턴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이스트우드가 ‘황야의 무법자’에서 쓴 권총 손잡이와 벨트 그리고 그가 입고 신었던 판초와 부츠 및 이스트우드의 적으로 나온 지안 마리아 볼론테의 윈체스터 장총 등이 지금 그리피스팍 내 아메리칸 웨스트 오트리 뮤지엄에서 전시되고 있다. ‘옛날 옛적 이탈리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Once Upon a Time in Italy… The Westerns of Sergio Leone)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얼마 전 보러 갔었다.
전시관 입구에서 한 손에 장총 그리고 다른 한 손에 회중시계를 든 이스트우드의 대형 초상화가 날 반긴다. 3~4개의 방으로 구분된 전시관에는 권총 등 각종 무기와 헨리 폰다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각기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에서 입었던 검은 옷 그리고 세트와 의상 디자인 및 이탈리아어와 세계 각국어로 된 포스터 등이 전시되고 있다. 헤드폰으로는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TV 모니터에서는 ‘블랙 십 사건’의 일부가 돌아가고 있고 레오네와 할리웃 영화와의 관계를 다툰 미니 기록영화도 상영되고 있다. 그리고 시적이요 광활하며 아름답고 폭력적인 걸작 ‘옛날 옛적 서부에’의 그 유명한 기차역 첫 장면에 나온 찰스 브론슨과 그를 맞는 3인의 악당 건맨들의 실물 크기 모형도 서있다.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의 웨스턴은 극단적인 클로스-업과 와이드 샷이 특징, 존 포드의 웨스턴을 빼고 나면 가장 훌륭한 웨스턴이라 할 수 있는 ‘옛날 옛적 서부에’의 오프닝 신은 이 두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레오네는 자기 영화에서 할리웃 웨스턴의 장면들을 잘 변용해 썼는데 ‘옛날 옛적 서부에’를 보면 ‘하이 눈’과 ‘셰인’ 및 존 포드 영화의 모뉴먼트 밸리 장면들을 인용한 부분이 보인다.
레오네의 아버지는 무성영화시대 감독이자 배우였고 어머니도 배우여서 그는 영화속에서 자란 셈이다. 레오네는 어릴 때를 회상하며 “내 인생, 내 독서, 나에 관한 모든 것이 영화를 감싸고 돌았다”면서 “그래서 내게 있어서는 영화가 인생이요 인생은 영화였다”고 말했다.
레오네는 이탈리아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견습생으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윌리엄 와일러가 ‘벤-허‘(1959)를 찍을 때 조감독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31세 때 미국 배우 로리 칼훈을 주연배우로 쓴 ‘검과 샌달’ 영화 ‘로즈의 콜로서스’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레오네도 다른 많은 영화인들처럼 영화를 통해 미국을 경험했는데 특히 그는 웨스턴을 사랑했었다. 레오네는 이 웨스턴을 통해 자기 영화에 미국적 신화의 힘을 변용했던 장인이었다.
전시회는 내년 1월22일까지 계속된다. (323)667-2000.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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