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년째 참석한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는 상영하는 영화만 달랐지 나머지는 모두 예년과 같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숙소인 라마다 호텔 인근의 무뚝뚝한 그리스 아줌마가 경영하는 다이너서 조반 먹고 20분을 걸어 토론토의 웨스트우드인 요크빌의 매뉴라이프 빌딩 내 있는 바시티 극장엘 도착한다.
프레스-인더스트리(영화업자) 시사회가 열리는 바시티 극장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영화를 본 뒤 명동거리 닮은 영 스트릿의 식당서 늦은 저녁 먹고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하니 군대생활이나 다름없다.
이러다 보니 피곤이 겹쳐 극장서 깜박깜박 졸기도 하지만 여름 내내 정크 영화만 보다가 비로소 어른들을 위한 좋은 영화들을 본다는 것 하나만 해도 영화제는 가볼 만하다.
나도 어지간히 영화를 좋아하지만 토론토 시민들처럼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바시티 극장 주변은 연일 그야말로 식전부터 밤늦게까지 표를 사려는 사람들과 표를 사 극장에 입장을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표 1장에 20달러(캐나다 달러)나 하는데도 일찌감치 대부분 표가 매진돼 매표소 앞에 놓인 스케줄 판은 매진된 영화 제목을 붉은 매직펜으로 지워버린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사진)
토론토 영화제는 관객 위주의 영화제로 이들이 영화제의 성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우 대중과 친한 영화제로 일부 극성 팬들은 접는 의자에 앉아 철야하며 매표소 개장을 기다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표를 사려고 직장에 병가를 내기도 했다고 신문들이 말했다. 토론토 시민들뿐 아니라 뉴욕에서 10시간 기차 타고 온 사람도 있고 플로리다서 온 팬도 있다.
토론토의 양대 신문인 토론토 스타와 내셔널 포스트는 연일 영화제 특집을 내 분위기를 북돋웠다. 영화제 덕택에 영화제 기간인 9일간 경기도 반짝 호황을 누려 택시, 리모, 명품점, 식당과 바 등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스타지가 보도했다. 이 틈에 바가지도 씌워 스타들이 묵는 포시즌스 호텔의 바에서는 한잔에 70달러짜리 마티니도 팔았다.
시사회에 참석하다 보면 LA의 동료 비평가협회 회원들과 영화 홍보회사 직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마치 LA의 영화계를 옮겨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출품된 250편의 영화 중 좋은 영화를 고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안목과 취향 그리고 귀동냥과 동료 비평가들의 권고를 참고해 고르는데 그래도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영화제 참석은 진주조개 채취작업이다.
나는 스타들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이나 파티는 사절하고 하루에 다섯 편씩 영화만 봤는데 뜻밖에 스페인 스타를 만난 에피소드가 있다. 스케줄 중복으로 못 본 영화의 표를 얻으러 인더스트리용 무료 입장권을 주는 장소에서 지적인 서스펜스 영화 ‘그뢴홈 방식’에 나온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당신 영화 어제 봤는데 좋았다”고 말을 건넸다. 노리에가는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 각본이 매우 좋아 출연했다”며 반가워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미국 형사범죄 액션영화 ‘에디슨’ 상영이 끝난 뒤의 일. 영화가 끝나 극장을 나오는데 평소 안면이 있는 이 영화의 미국 홍보회사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이 직원은 내게 “오늘 저녁에 출연 배우들과 함께 칵테일을 하면서 인터뷰를 해 서울로 송고 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모간 프리맨, 케빈 스페이시, 딜란 맥더맛 및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나오는 ‘에디슨’이 좋은 영화였다면 난 이 제안에 선뜻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극히 상투적이요 미성숙한 폭력 액션영화여서 그 제의를 사절했다. 배우들 만나 얘기해 봐야 좋은 소리 나올 일이 없을테니까.
토론토도 개스값이 1리터에 1.20달러나 한다며 파키스탄계 택시 운전사가 투덜댔다. 그리고 올 들어 지금까지 갱 총격으로 40명이 죽어 주민회의가 열리고 부동산 값이 급등하는 것까지 LA와 비슷했다.
늘 그렇듯이 떠날 때면 시원섭섭한 마음. 특히 스케줄이 겹쳐 보고픈 영화를 못 본 게 크게 아쉬운데 배용준의 서푼짜리 간통영화 ‘외출’을 보느라 히로히또의 항복 전 고뇌를 그린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태양’을 못 본 게 아직도 속상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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