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맑다는 뜻을 가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수장시킨 뉴올리언스를 지난1998년 가을에 방문했었다. 한국의 본보가 기획한 시리즈 ‘세계영화기행’의 하나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뉴올리언스는 남으로는 미시시피강과 멕시코만의 두 주둥아리 사이에 있고 북으로는 거대한 폰차트렌호가 진을 치고 있는 물의 도시다. 수면보다 아래에 있어 관이 든 무덤들이 지상에 있는데 이 무덤들은 이곳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다.
미시시피강이 껴안은 모양이 초승달 같아 ‘초승달시’(Crescent City)라 불리는 뉴올리언스는 재즈와 습기와 프랑스 풍의 거리 프렌치 쿼터의 도시이다. 프렌치 쿼터의 폭이 넓지 않은 거리 양쪽에는 재즈술집과 오이스터 바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나는 뉴올리언스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택시로 프렌치 쿼터를 찾아갔었다.
많은 술집 중에 ‘디자이어’(욕망)라는 이름의 술집이 내 취재 목적에도 부합해 들어가 바에 앉았다. 굴안주와 스카치를 마시다가 옆의 미국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자기를 뉴올리언스 토박이라고 소개한 이 사람이 뉴올리언스의 별명이 무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관광객이 많고 또 주민들이 흥청망청 놀기를 좋아해 ‘파티 타운’이라고 부른다”고 알려 주었다.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어두운 것은 외면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는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로 알려졌다. ‘케 세라 케 세라’ 스타일인데 이번 카트리나의 후유증을 보도한 LA타임스는 시민들의 이런 생활태도가 대 재난 예방 장치를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자연 재난은 인간이 환경을 잘 못 다뤄 일어나는 것인데 뉴올리언스의 이번 재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1951)는 이번에 역시 카트리나에 의해 혼이 난 미시시피 태생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이 원작이다. 영화는 불미스러운 과거를 지닌 나약한 블랜치(비비안 리)가 전차를 타고 디자이어 스트릿을 거쳐 프렌치 쿼터 북쪽에 있는 빈민가 엘리지안 필즈(‘이상향’이라는 이름이 아이러니컬하다)에 사는 언니 스텔라 (킴 스탠리)의 집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텔라의 남편은 폴랜드계 공장 노동자인 코왈스키(말론 브랜도)인데 그는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포커와 볼링이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짐승같은 인간이다.
이런 코왈스키와 “나는 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을 원한다”며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상상으로 덮어버리는 나방이 같은 블랜치는 서로 천적지간. 코왈스키는 집도 비좁은데다가 날은 더워 땀은 나는데(그가 입은 러닝 셔츠의 가슴부분이 늘 흥건히 땀에 젖어 있어 뉴올리언스의 습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처제가 ‘꿈’이니 ‘타인의 친절’이니 하며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 자기를 무시해대니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현실과 꿈이 묘한 애증관계를 맺으며 서로 놀리고 얼리고 악을 쓰다 결국 꿈은 현실의 더러운 발바닥에 짓뭉개 지고 만다.
나는 뉴올리언스에서 택시를 불러 운전사에게 블랜치가 간대로 ‘욕망가’(Desire Street)를 지나 엘리지안 필즈로 가자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거기 가봐야 별로 볼 것도 없고 위험하다”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가자고 졸라 지나간 ‘욕망가’는 가난이 먼지처럼 뿌옇게 내려 덮고 있었다. 흑인 슬럼이었는데 마치 욕망이 부작용을 일으켜 누추를 구토해낸 것 같았다.
이번 허리케인에 차가 없어 대피를 못한 이곳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컸다는 뉴스를 보면서 심정이 찹찹해졌다. 나는 당시 다운타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에 묵었는데 호텔서 멀지 않은 곳에 교포가 경영하는 식당 ‘징기스칸’이 있었다. 식당 주인이 손님들 앞에서 직접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멋있는 곳이었다. 그 식당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해진다.
블랜치가 타고 갔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비롯해 뉴올리언스의 여러 전차노선은 지난 1950년대 모두 폐쇄됐는데 유일하게 세인트찰스 노선만 남아 낡아빠진 전차를 굴리고 있었다. 나무의자에 앞뒤가 없는 것이 1950년대 서울거리를 달리던 전차와 똑같았다. “땡땡 땡땡”하며 종을 울리며 달리는 전차가 향수감을 불러 일으켰다.
패츠 도미노는 ‘워킨 투 뉴올리언스’에서 “짐을 싸들고 내 고향 뉴올리언스로 돌아간다”고 노래했는데 사나운 여자 카트리나 때문에 짐을 싸들고 집을 떠났던 뉴올리언스 시민들도 패츠 도미노처럼 이 노래를 부르며 속히 귀가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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