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은 존재와 죽음, 젊음과 노령, 사랑과 고통 그리고 인생과 예술의 상충하는 주제들을 상징적으로 다룬 심오한 작품이다. 특히 글은 불가사의한 영적 니르바나인 예술을 추구하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영원한 미에 대한 집념을 천착하고 있다.
감정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중단해 온 중년의 소설가 구스타베 폰 아쉔바하가 함께 시들어 가는 육체와 영혼을 지닌 채 예술의 도시 베니스를 방문한다. 그는 이상과 작가로서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고 인내하며 투쟁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어서 어찌 보면 황량한 인간이다.
이렇게 감정과 정열을 두려워하던 아쉔바하가 폴랜드에서 베니스로 어머니와 함께 휴양 온 미소년 타지오를 목격하면서 자기 생애 마지막으로 아름다움과 감정의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병약하고 외적으로 보잘것없는 아쉔바하가 발견한 미의 결정체인 타지오는 그리스 대리석상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금발 소년.
아쉔바하는 자기 생애 처음 목격하게 된 이 세상에서의 미의 극치인 타지오(사진)를 멀리서 동경과 염원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고통한다. 예술가의 절대적 미에 대한 집념은 고통스럽고 슬프며 마침내 죽음까지 초래하고 만다.
때마침 베니스를 엄습하는 콜레라에도 불구하고 아쉔바하는 이 썩어 가는 도시를 떠나지 않고 아름다움 곁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아쉔바하는 바다를 배경으로 선 타지오의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고도와 함께 부식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아폴로적 미를 추구해온 그는 격렬한 디오니소스적 미를 목격하면서 숨을 거둔다.
이 글을 원작으로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가 만든 영화‘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은 작품의 뜻과 분위기를 잘 살린 아름답고 강렬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아쉔바하 역은 작고한 영국의 명우 더크 보가드가 맡아 저며들도록 슬픈 눈동자와 얼굴 표정의 연기를 했다. 특히 비스콘티는 영화에 고매한 영혼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영화에서는 아쉔바하가 작곡가로 바뀌었는데 그는 말러가 모델이라는 설이 있다)의 교향곡 제3번과 제5번의 음악을 절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말러의 음악이 매 장면을 초혼하듯 감싸 안으며 흐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것은 제5번 교향곡의 제4악장의 엄청나게 느린 아다지에토. 이 하프와 현으로만 연주되는 악장은 말러가 연인 알마에게 보낸 멜로디의 연애편지인데 부드럽고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엘레지이다. 생전 말러 음악 보급에 진력한 홀랜드의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에 따르면 알마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는 이 연애편지를 듣고 말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심금을 울리는 음악은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조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나는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대학생 때 읽었지만 영화는 미국에 온지 얼마 안돼 재개봉관인 뉴베벌리 시네마에서 처음 봤다. 영화와 음악의 비장한 아름다움에 느낀 감동이 거의 아플 지경이었다. 이것이 내가 말러를 좋아하게 된 계기로 나는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면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연주시간이 보통 80분짜리들인 10개의 교향곡(10번은 미완성)으로 유명한 말러의 음악은 종교적이요 철학적이다. 말러는 죽음에 집착했던 사람이어서 음악도 염세적 분위기를 지녔지만 그의 최대 걸작인 교향곡 제2번 ‘부활’에서도 그렇듯이 말러는 죽음과 어둠을 삶의 축하와 영혼의 승천으로 극복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 말러 음악을 보다 가깝게 접근시켜 주는데 크게 기여한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의 교향곡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너무나 진실되고 또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어렵고 과장됐다는 비판도 받지만 나는 그의 음악이 ‘어려워서’ 좋다. 그의 음악을 듣자면 공부하는 학생이나 고행하는 수도승의 마음 자세를 갖게 되곤 한다. 조금씩 조금씩 깨닫는 기쁨이어서 들을 때마다 희열의 결이 겹이 된다.
지난 화요일 레너드 슬래트킨의 지휘로 LA필이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제5번을 들으려고 할리웃 보울에 갔다. 먼저 찰스 아이브스의 묘사 음악과도 같은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가 연주됐고 휴게시간 후 말러가 연주됐다. 우아하고 섬세하면서도 힘있고 풍성한 연주였다. 늦여름 소슬한 밤 기운을 타고 호소하듯 속삭이는 아다지에토에 포도주 기운이 더 붉어졌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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