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하순 원고인 영화감독 로만 폴랜스키의 승리로 끝난 명예훼손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몇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다른 한 사람 병신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 다행히 폴랜스키가 이겼기 망정이지 패소했더라면 그는 평생 살해당한 아내의 이름을 팔아 여자를 유혹한 후안무치의 치한으로 살 뻔했다.
폴랜스키의 재판은 잡지 배니티 페어 2002년 7월호의 글이 발단이 됐다. 글은 하퍼스 매거진의 편집장 루이스 래팸의 말을 빌어 1969년 8월 폴랜스키가 자기 아내 샤론 테이트의 피살 직후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일레인스에 들러 아내의 이름을 팔면서 노르웨이 모델 베아트 텔레를 유혹했다고 폭로했다. 폴랜스키가 식당 안의 텔레에게 다가와 그녀의 넓적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오랫동안 주무르면서 “당신을 또 하나의 샤론 테이트로 만들어주겠오”라고 꼬드겼다는 것. 이 글을 본 폴랜스키는 내용이 샤론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더럽혔다면서 잡지의 영국 발행인들을 상대로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폴랜스키는 재판에서 영국 법정에 나오는 대신 이색적으로 거주지인 파리서 생으로 비디오 증언을 했다.
폴랜스키는 할리웃서 활동할 당시인 1977년 13세난 소녀와 섹스를 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 판결이 나기 전 파리로 달아났었다. 미국과 범인 인도협정이 체결된 영국에 갔다가 붙잡혀 LA로 압송될 것이 두려워 비디오 증언을 한 것이다. 그래서 도망자 폴랜스키는 2003년 ‘피아니스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고도 파리서 영상으로 인사말을 했다.
폴랜스키의 승소 직후 소송의 중심 인물인 텔레(재판 당시 피고측 변호인이 그녀의 소재를 파악 못해 출정치 않았다)는 메일 오브 런던지와의 인터뷰에서 “폴랜스키는 그 때 내게 아무 말도 안 했고 단지 날 오래 응시했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래팸은 법정 진술서 이런 발언과는 정반대로 “당시 폴랜스키가 텔레를 유혹하는 말들이 너무도 천박해 내 기억에 뚜렷하다”고 말했다. 또 당시 텔레의 애인이었던 에드워드 펄버그도 “텔레가 내게 폴랜스키가 자기를 유혹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36년 전 일이어서 기억에 혼돈이 일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명확하고 자신 있는 발언이다. 이런 허위에 의한 인격 살인의도의 뒤에는 래팸 등의 쾌락파 귀재감독 폴랜스키에 대한 증오와 질시의 감정이 숨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피고측은 법정에서 “패소하더라도 폴랜스키의 명예는 지켜 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거듭 인신공격을 했었다.
래팸 등이 폴랜스키의 유혹 발언을 창작한 데는 다분히 그의 과거 자유분방한 섹스관행이 유발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폴랜스키에는 한때 한꺼번에 두 여자와 섹스를 하는 등(본인 고백) 다채로운 침실행위로 유명했는데 요즘은 마음잡고 배우인 아내 에마뉘엘 세녜(39)와 잘 살고 있다.
폴랜스키가 법정 진술서 눈물을 흘리며 명예를 옹호했던 샤론 테이트(사진)는 폴랜스키로 하여금 불혼선언을 깨게끔 만든 할리웃 최고 미녀 중 한 명. 그러나 커다란 갈색 눈에 눈부신 미소를 지녔던 모델 출신의 테이트는 남편이 그녀를 스타로 성공시키기 전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잔인하게 살해돼 세계적 뉴스가 됐었다. 그녀는 26세였다.
1969년 8월9일 새벽. 카리스마를 가진 사이코 히피 찰스 맨슨과 그의 ‘가족’이라 불리는 추종자들이 벨에어의 테이트의 집에 침입했다. 이들은 “임신했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테이트와 그녀의 남녀 친구 4명을 총과 칼로 살육했다(당시 폴랜스키는 영화 촬영차 유럽에 있었다). 그리고 범인 중 1명은 테이트의 피로 적신 타월로 정문에 ‘돼지’라는 단어를 써 남겼다.
이들은 같은 날 밤 로스 펠리스의 다른 저택에 침입 라비안카 부부를 참혹히 살해했다. 그리고 범인들은 부엌 냉장고에 피살자의 피로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비틀즈의 노래)라고 써 놓았다. ‘테이트-라비안카 사건’이라 불리는 이 충격적 살인은 평화와 사랑과 자유분방의 시기였던 60년대를 마감시킨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부작 TV 드라마 ‘헬터 스켈터’는 이 사건을 냉정하게 해부한 뛰어난 작품이다. 볼 때마다 전율하게 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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