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 약을 먹었는지 오래 전 중년이 된 이래 도무지 늙지를 않는 잉꼬부부 대그우드와 블론디가 신문만화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75년째가 된다. 이 집안은 두 부부만 안 늙는 게 아니라 두 남매 알렉산더와 쿠키도 만년 틴에이저이고 대그우드 닮아 늘 잠만 자는 애견 데이지도 안 늙는다.
요즘 월급쟁이 대그우드는 고약한 공처가 사장 디더스(그의 아내 코라는 우산으로 남편을 마구 팬다)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지만 1930년 9월8일 칙 영(1973년 사망)이 ‘블론디’를 처음 그렸을 때만 해도 대그우드 범스테드는 백만장자 집 플레이보이 외아들이었다. 대그우드가 블론디와 결혼하기까지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요즘 우리가 아는 컬을 한 금발의 블론디는 현모양처이지만 그녀는 대그우드와 결혼하기 전만 해도 부파둡이라는 성을 가진 골드디거(돈 많은 남자 노리는 여자) ‘후라빠’였다. 그래서 대그우드가 블론디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는 이를 결사 반대했었다. 대그우드는 이에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투쟁 28일만에 아버지의 결혼승낙을 받아냈으나 아버지는 아들을 유산상속에서 제외시켰다. 그래서 대그우드는 1933년 2월17일에 블론디와 결혼하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이런 사랑의 돈에 대한 승리가 당시 경제공황에 시달리던 시민들의 가슴에 크게 어필, 만화의 성공에 일조를 했다.
‘블론디’는 나와 아주 가까운 사연이 있다. 나는 70년대 초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 외신부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부장이 종종 내게 ‘블론디’ 번역을 맡기곤 했다(‘블론디’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일보가 독점 연재하고 있다). 만화 번역은 기사 번역과 달라서 미국인들의 생활용어와 유머를 알아야 하고 말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툭하면 만화를 들고 자매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서 일하는 미국인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곤 했다.
실수 연발의 대그우드는 보통 사람 중에서도 보통 사람이어서 보통 사람들인 우리가 강한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대그우드와 블론디의 얘기는 사랑, 결혼, 자식 양육, 가사, 직장, 식사와 휴식 그리고 수면 같은 우리들의 얘기인데 이중에서 나와 대그우드가 제일 비슷한 점은 잠보라는 것. 잠보는 게으름뱅이로 대그우드는 틈만 나면 카우치에서 새우잠을 자고 TV 앞에서 신문을 보는 게 큰 낙인데 아침에는 “5분만” 하다가 블론디에게 강제로 침대 밖으로 끌려나오곤 한다.
그래서 대그우드는 출근 때 상의를 입으면서 문밖으로 뛰어나가곤 하는데 옛날에는 늘 떠나는 버스를 따라 뛰어야했고 요즘에는 같이 카풀하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곤 한다. 이 덤벙대는 대그우드가 아침에 문을 열고 쏜살같이 뛰어나갈 때 자주 충돌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선량한 우체부 비슬리씨. 충돌장면이 마치 풋볼경기의 태클장면을 보는 것처럼 스릴마저 있다.
목욕하면서 고성방가 하기를 즐기는 대그우드가 새우잠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먹는 일. 저녁을 실컷 먹고도 밤에 자다가 허기지다며 일어나 냉장고에서 그 날 먹다 남은 미트로프와 햄과 야채 등을 꺼내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어 큰 입 벌리고 먹곤 한다. 그래서 잡탕 샌드위치를 일컫는 대그우드 샌드위치라는 단어가 웹스터 사전에까지 올랐다. 수년 전부터 블론디가 가사 돕는다고 케이터링업을 시작해 요즘 대그우드는 먹을 복이 터졌다. 그렇게 먹고도 소화불량도 안 걸리고 체중도 늘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
내가 봐도 블론디는 사랑을 받을 만한 여자로 그녀는 예쁘고 명랑하고 똑똑하고 실제적인 생활인이다. 그녀는 만년 아이 같은 남편과 가정을 받쳐주는 기둥이다. 나는 늘 짧은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블론디를 무척 섹시한 여자로 보는데 블론디는 모든 남편이 바라는 섹시한 가정주부의 표본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대그우드가 결혼한지 72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블론디를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대그우드는 지금도 출근 때와 귀가 때면 반드시 블론디를 꼭 끌어안고 “쪽“소리를 내며 키스하는데 출근 때 서두르다가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블론디가 남편을 불러들여 반드시 키스를 받아낸다. 70년이 넘도록 변치 않는 사랑이라니 불가사의다.
블론디가 탄생 75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일부터 시작해 앞으로 석달간 ‘가필드’와 ‘비틀 베일리’ 및 ‘딕 트레이시’ 등 다른 신문만화 속으로 들어가 거기 주인공들과 교류를 한다. 신문 만화계의 큰 경축행사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딘 영이 그리는 블론디는 지금 전 세계 55개국 2,300개 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해피 애니버서리 블론디!”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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