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영중인 공상과학 액션영화 ‘우주전쟁’은 외계 어느 별에 사는 인간보다 지적으로 월등한 생명체가 오랫동안 지구와 인간을 관찰하다가 인간들에게 샘을 느껴 지구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런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같은 하나의 가정을 극단으로 몰고 갔을 때의 결과들을 보여 주는 책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다. 나는 최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연상케 하는 이 어른들을 위한 우화요 동화를 뒤늦게 읽으면서 인간 사고의 한계성과 그것을 단 한치만이라도 돌파했을 때 올 수 있는 사유의 무한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
18편의 짤막한 글들로 구성된 책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재울 때 들려주는 얘기처럼 환상적이요 다정하다. 매우 염세적이요 인간 혐오적이며 또 무신론적 사상을 느끼게 되는 책인데 베르베르는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기 위해 우리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시선을 빌어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말 없는 친구’에서는 이 인간과 다른 존재로 지각하고 감지하는 나무가 나온다. 이 나무는 비발디와 하드록을 즐기고 고통하고 기뻐할 줄도 안다. 인간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 나무는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데도 인간은 ‘나무는 나무일뿐이다’라는 고정된 관념 아래 ‘나무’라고 존재의 이름을 붙여놓고 외면하고 있다. 이 나무처럼 사물은 이름이 주어질 때야 비로소 우리에게 존재하는데 인간은 그것들이 이름이 주어지기 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하지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허깨비의 세계’에 적혀 있다.
‘허깨비의 세계’와 ‘암흑’ 및 ‘말 없는 친구’들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은 생각하고 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나의 사고와 시선으로만 대상을 보지 말고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내 쪽을 볼 수 있는 생각의 아량을 가지라는 것이다. ‘암흑’의 주인공은 핵전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인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은 핵전쟁 탓이 아니라 늙어 시력이 감퇴했기 때문에 암흑 속에 살고 있었다. 나는 이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이야기가 주는 예지를 읽고 겸손해지면서 깊은 감탄을 했다.
베르베르는 문명세계의 관찰자들인 인간의 눈길이 안 미치는 곳에 독자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E.T.가 있는데 인간은 앞뒤가 꽉 막혀 그것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에서 다른 별의 생명체들이 지구의 인간을 관찰하면서 묘사한 우리 생태는 희화적이요 비속하기까지 하다. 외계 생명체가 본 인간은 수컷은 귀가하면 먼저 오줌부터 누고 암컷은 군것질부터 하는 괴물이다. 그리고 이 괴물들은 애완용으로 가게에서 판다.
‘그 주인에 그 사자’(사진)는 현재 진행중인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체 복제 생산을 생각케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유전자를 조작해 도시생활에 적응케 만든 사자들을 애완용으로 키운다. 그런데 그 사자들이 인간을 잡아먹자 인간은 이번에는 사자 제거용 독전갈을 대량 생산하고 그것들을 애완용으로 삼는다. 이 이야기는 유행을 따르는 것의 단점을 말하고도 있지만 나는 사자들을 총기로 생각해 봤다. 총을 사랑하다 총에 희생되고마는 미국 같은 나라들의 이야기 같다.
첫 번째 이야기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생명체처럼 구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풍자. 베르베르는 자유능력을 지닌 기계를 인간에 비유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영혼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마지막 이야기 ‘어린 신들의 학교’는 인간과 그들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다. 어른 신들은 인간을 관찰하면서 어린 신들에게 인간은 욕망의 화신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인간은 민족이니 국가니 하면서 혈기를 부리고 종교를 내세워 전쟁을 하는 안쓰러운 존재들이라고 알려준다.
인간의 생각은 고작해야 그들의 지식과 관점의 한계 내에서만 작용할 뿐이지 그 너머에 들어서면 무기력해지고 만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도 이런 한계 내에서의 자화자찬일 뿐이다. 가령 우리는 동물원 우리 속 원숭이들의 재롱을 보면서 킬킬대며 재미있어 하는데 이와 반대로 원숭이들이 큰 우리 속에 갇힌 인간들의 재롱을 보면서 재미있어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나무’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에 대한 자성론이자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선의있는 비판이다. 각성은 사고의 자유에서만 올 수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