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티 데이비스를 좋아한다. 킴 칸스도 노래했지만 베티 데이비스 하면 눈이다. 나도 그 눈이 좋다. 그녀의 불같던 성질이야 들여다 볼 길 없지만 나는 요즘에도 데이비스의 사진을 볼 때면 그녀의 눈 속 수심에 깊이 잠기곤 한다. 도톰한 눈두덩 아래 떠있는 커다란 호수 같은 눈은 조금 너무 커 두렵기까지 하지만 자진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익사해도 좋을 만큼 황홀한 흡인력을 내뿜는다.
킴 칸스는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에서 이렇게 그녀의 눈을 찬양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할로우의 금발이며 그녀의 입술은 달콤한 경이지요./ 그녀의 손은 결코 차갑지 않아요. 그녀는 베티 데이비스의 눈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녀는 당신을 희롱하고 당신을 설레게 만들 거예요. 그건 모두 당신을 더욱 즐겁게 해주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녀는 당신을 뒤집어 놓을 거예요. 당신을 주사위처럼 굴릴 거예요. 당신이 정신이 어질어질해 질 때까지. 그녀는 베티 데이비스의 눈을 가졌지요.’ 그래, 베티 데이비스의 눈은 남자를 희롱하며 유혹하는 눈이다.
‘미 스크린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데이비스는 스튜디오가 배우를 상품으로 취급하던 할리웃 황금기 험난한 배우의 길을 손톱으로 끌어당기며 가 정상에 오른 여자였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었지만 그보다 근면과 인내로 스크린을 군림했던 성실파였다.
30년대 초 무대를 거처 할리웃에 와 워너 브라더스(WB)와 장기계약을 맺고 스튜디오가 주는 일련의 한심한 영화들에 나왔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이런 수모를 참고 부지런히 일했는데 쓰레기 같은 영화 속에서도 그녀의 강한 개성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비평가들은 영화는 혹평하면서도 늘 데이비스의 연기는 칭찬했다.
이런 도도한 개성과 투혼으로 따 낸 역이 ‘인간의 굴레’(1934)에서의 이기적이요 못 되 먹은 웨이트리스역. 그녀의 실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감전을 일으킬 맹렬한 연기였다. 다음해 눈물 짜는 멜로물 ‘위험한’으로 첫 번째 오스카상을 받았다.
이 후로도 WB가 계속해 자기에게 하찮은 범죄 드라마와 감상적인 소프 오페라만 제공하자 데이비스는 출연 거부를 선언했다. WB는 데이비스의 이런 반항에 출연정지령을 내렸는데 열화 같은 성질에 강철 같은 개성을 지녔던 그녀는 WB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
절대군주와도 같은 스튜디오 사장을 상대로 일개 여배우가 소송을 내 큰 화제가 됐었는데 데이비스는 패소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WB는 그 후 데이비스에게 그녀의 성질과 재능에 맞는 역을 주며 경의를 표했다.
30년대 후반 들어 데이비스는 완벽한 테크닉의 연기자로 성장, 예술적 성숙기를 누렸다. 그녀의 두 번째 오스카 수상작인 ‘제저벨’(1938)과 ‘늙은 하녀’ 등이 그 대표작들.
데이비스는 특히 여성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고약한 암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개성과 자존과 독립성을 고수하며 강한 여인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데이비스는 40년대 초 ‘작은 여우들’ 등 여러 걸작에 나왔으나 종반 들어 슬럼프에 빠졌다가 1950년 ‘이브의 모든 것’으로 불사조처럼 재기했다. 여기서 뉴욕 무대배우 마고로서 의 연기는 데이비스의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50년대 말 또 한번의 슬럼프에 빠졌다가 60년대 초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등 2편의 공포영화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뚝심 센 여자다. 모두 10번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데이비스는 1989년 81세로 사망한 그 해에도 영화에 나온 불굴의 혼을 지닌 연기자였다. 생애 모두 4번 결혼했는데 자기 영화를 연출한 윌리엄 와일러 등 감독들과의 로맨스도 많았던 정열파였다.
데이비스의 영화 5편이 WB에 의해 ‘베티 데이비스 컬렉션’(Bette Davis Collection) 세트로 나왔다. 그 중에는 모든 사랑의 영화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름답고 슬픈 ‘이제, 항해자여’(Now, Voyager·1942·사진)도 있다. 데이비스가 격정적 연기를 하는 ‘편지’(The letter·1940)와 로맨틱 드라마 ‘스케핑턴씨’(Mr. Skeffington·1944), 그리고 불치의 병에 걸린 여인의 불타는 마지막 삶을 그린 ‘어두운 승리’(Dark Victory·1939) 및 한물 간 할리웃 스타의 드라마 ‘스타’(The Star·1952)등 모두 명화들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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