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하면 검은 원추형 모자에 검은 케이프를 걸치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저주하는 무서운 모습이 연상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마녀는 핼로윈용 마녀이고 이와 반대로 귀엽기 짝이 없는 마녀도 있다.
오늘 개봉되는 니콜 키드만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아내는 요술쟁이’(Bewitched-영화평 위크엔드 판)의 주인공 새만사 스티븐스가 바로 그 예쁜 마녀다. 코에다 주름살을 일으키며 요술을 부리는 마녀 아내 새만사와 그의 약간 모자라는 듯한 인간 남편의 사랑과 정다운 가정불화의 얘기인 이 영화는 1964~1972년까지 8년간 ABC-TV를 통해 방영된 동명의 시트콤이 원작(Sony는 영화 개봉에 맞춰 이 시트콤 첫 시즌 36회분을 4장의 CD 세트로 최근 출시했다).
요즘에도 가끔 케이블 TV TV랜드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 시트콤은 나도 한국서 즐겨 봤다. 특히 귀엽게 생긴 새만사역의 엘리자베스 몬고메리(1995년 사망)가 참다못해 가끔 요술을 부려 남편(딕 요크)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나는 시트콤을 보면서 ‘내 아내가 샘처럼 마녀라면 재미있겠네’라고 공상하기도 했었다.
미국의 마녀의 본고장은 보스턴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 세일렘이다. 이 동네에 가면 곳곳에 마녀 동상과 마녀용 빗자루와 의상 등을 파는 기념품점이 있고 또 관광객들을 위한 마녀 도보관광과 무덤 순례 등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아내는 요술쟁이’ 개봉에 앞서 세일렘에 지난 15일 초생달을 뒤에 하고 빗자루를 옆으로 탄 채 비행하는 새만사의 청동상(사진)이 세워졌는데 이 동상이 세워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LA타임스가 말했다.
동상 건립 반대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마녀 도시’라는 오명이 찍힌 동네 이미지만 더 나빠진다는 주장. 또 마술을 종교로 신봉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재미거리로 삼을 수 없다며 반대했는데 시 관리들이 몇 달간의 토론 끝에 건립을 허락하게 된 것
세일렘이 마녀 도시가 된 까닭은 1692년에 있었던 괴이한 사건 때문이다. 이 마을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성경의 문구를 글자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는 베드로 전서 5장8절의 말을 믿고 수행했다.
당시 동네 목사의 9세난 딸 베티와 그녀의 사촌 및 이들의 친구들은 바베이도스 태생의 노예 티투바가 들려주는 마법과 환상의 얘기를 즐겼는데 1692년 2월 베티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어 다른 소녀들도 같은 증상을 보였는데 이런 괴현상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던 베티의 아버지 등 동네 유지들은 이것이 마귀의 짓이라고 규정짓고 티투바 등을 고문해 자백(?)을 얻어낸 뒤 모두 19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것이 미국판 ‘마녀 사냥’의 효시다.
마녀 사냥 얘기는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로맨틱하고 우습고 재미있는 것은 프레데릭 마치와 베로니카 레이크가 주연한 ‘나의 아내는 마녀’(I Married a Witch·1942)이다. 세일렘의 마냥 사냥에서 처형당한 사람의 후손인 마녀가 예쁜 여자로 둔갑해 조상의 고향에 돌아와 옛 처형자의 후손에게 복수하려다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세일렘의 마녀 사냥 얘기는 또 1953년 아서 밀러에 의해 희곡 ‘시련’(The Crucible)에서도 다뤄졌다. 밀러는 마녀 사냥의 얘기를 빌어 당시 미국을 휩쓸던 공산당 때려잡기인 매카시즘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시련’은 1996년 아서 밀러가 각본을 쓰고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세 때 기승을 떨던 종교재판도 일종의 마녀 사냥이다. 잔 다르크는 이 사냥의 제물인 셈인데 수백년 전 유행하던 마녀 사냥은 요즘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치인들이 자기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잘 써먹고 있다.
자기 의견과 다른 것을 무조건 허위와 악으로 몰아대는 것이 마녀 사냥이다. 그러고 보면 마녀 사냥은 우리 주위에서 요즘에도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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