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스테이트인 캘리포니아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레드 존이 오렌지카운티다. 이 동네의 백인 부자들이 개인 돈으로 세운 공연센터가 코스타메사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의 시거스트롬 홀이다. 이 콘서트 홀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헨리 시거스트롬이 부지를 무료로 제공해 세워졌다. 부자동네여서 매년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들을 초청하는데 내가 베를린 필과 비엔나 필의 연주를 들은 곳도 여기다.
지금까지 콘서트,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장이었던 시거스트롬 홀 건너편에 내년 9월 새 콘서트홀인 르네 앤 헨리 시거스트롬 홀이 개관된다. 그러면 3,000석짜리 구관은 오페라 전용관, 2,000 석짜리 신관은 콘서트 전용관으로 쓰이게 된다.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는 내년 9월15일에 개관하는 새 콘서트 홀을 축하하기 위해 6주간 대규모 축제를 개최한다. 이 축제를 위해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있는 마린스키 디어터가 10월에 17일간 이 곳에 머물면서 콘서트와 오페라와 발레를 공연한다.
마린스키 디어터는 18세기 피터 대제가 세운 것으로 키로프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및 발레를 산하에 두고 있다. 예술감독은 카리스마를 지닌 발레리 게르기에프.(사진) 지난 4월 시거스트롬 홀에서 있은 새 콘서트 홀 개관기념 행사 발표장에 나온 게르기에프는 “이번 축제는 세계의 이목과 세계인들을 이 곳에 불러모을 역사적 사건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학수고대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키로프 오페라가 공연할 ‘링’사이클 이라 부르는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ebelungen)이다. 바그너의 신적 업적이라 불리는 ‘링’은 15시간짜리 대작이어서 보통 1주일에 걸쳐 공연한다. 키로프 오페라의 공연 일정은 10월6, 7, 9, 11일. 키로프 오페라는 지금까지 이 사이클을 러시아와 독일에서만 공연, 이번이 북미 초연이어서 벌써부터 ‘링’ 중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코폴라가 감독한 ‘지옥의 묵시록’에서 지휘관 로버트 두발이 공격용 헬기를 몰고 베트남 마을을 까부술 때 요란하게 틀어댄 음악이 ‘링’ 제2부 ‘발퀴레’의 제3막 전주곡 ‘발퀴레의 기행’이었다. 두발은 적에게 겁을 준다고 이 여신들의 하늘 비행을 틀었는데 ‘링’이야말로 한 마디로 말해 겁나게 압도적인 오페라다.
‘라인골트’(Das Rheingold) ‘발퀴레’(Die Walkure-내년 공연때 지크문트로 도밍고가 나온다), ‘지크프리트’(Siegfried) ‘신들의 황혼’(Die Gotterdammerung)등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철학적이요 종교적 경험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링’의 숭배자들은 요즘도 지구상에서 이 오페라가 열리는 곳을 따라 다니며 관람한다.
바그너가 대본부터 쓰고 음악을 작곡한 ‘링’은 신과 거인과 난쟁이, 물의 요정과 불을 뿜는 용 그리고 여전사와 영웅과 인간이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사랑하고 질투하며 또 저주하고 살육하는 세상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사랑의 구원 능력에 관한 아름답고 강력한 신화적 서사시다. 나는 9년전 이 오페라를 고교를 막 졸업한 아들과 함께 애리조나 플래그스탭서 애리조나 오페라의 공연으로 관람했었다. 1876년 8월 독일 바이로이트의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됐을때 오페라가 끝나자 차이코프스키는 “교도소를 출감한 기분”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때 이런 소감에 동의한 바 있다. 엄청난 지구력을 요구하는 음악이다.
내 친구 C는 지난 4월에도 시카고에서 공연된 ‘링’을 보러갔을 정도로 이 오페라를 사랑한다. 그가 2004년 1월 독일 바덴-바덴서 공연된 게르기에프의 ‘링’ 사이클을 관람한 소감을 보내왔다. “게르기에프의 중앙 아시아적 러시아적 해석은 바그너를 한층 더 넓게 해석, 독일적 ‘링’에서 해방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며 “그의 지휘는 크고 강력하고 유연하고 멜로딕하고 또 열정적이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끝에 “오렌지카운티서 하면 만사 제쳐놓고 가서 보기로 하자”고 제의했다. LA서 오렌지카운티로 순례자의 길을 가서 고행 끝의 희열을 친구와 함께 맛보려고 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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