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궁극적으로 음악의 성분이며 모든 사물은 궁극적으로 악기라고 할진대 나는 지난 일요일 종이가 악기로서 음악을 생성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중국계 작곡가 탄 둔의 종이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종이 콘체르토’를 듣고 보는 경험은 마법적이요 환상적이었다. 나는 이 날 음악이 우리의 일상 환경을 동화나 전설의 분위기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 6년간 LA필의 부지휘자로 활동한 젊은 지휘자 미구엘 하트-베도야의 바톤 아래 LA필이 협연한 ‘종이 콘체르토’는 탄 둔이 어릴 때 고향 후난서 겪은 소리의 추억을 되살린 작품이다. 탄 둔은 프로그램에서 “중국 시골에서 자라면서 나는 종이를 악기로 쓰고 물소리에 따라 노래 부르고 자기로 박자를 두드리면서 음악을 배웠다”면서 “‘종이 콘체르토’는 이런 어릴적 기억을 영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는 천장서 마루까지 3개의 긴 종이 두루말이가 걸려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온갖 종이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종이심벌, 종이봉투, 종이상자 북, 종이총채, 종이우산, 종이 큰 대롱북 및 종이 접는 부채 등을 보면서 과연 저것들이 무슨 소리를 낼까 하고 궁금증이 솟았다.
독주자는 탄 둔의 오스카 음악상 수상작 ‘와호장룡’에서 북을 쳤던 젊은 타악기 전문가 데이빗 코신. 코신은 무대 앞 그리고 LA필 소속 2명의 타악기 주자는 뒤에서 두루말이를 봉으로 때리고 손으로 잡고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하면서 흔들어 대면서(서커스의 공중그네 타기 모습 같다) 천둥과 폭풍과 바람소리를 만들어냈다.
이날 오케스트라 편성의 특징은 객석 주위로 바이얼리니스트들을 배치한 것. 먼 아름다운 효과음을 내면서 청중들을 음악 속으로 끌어 잡아당기었다. ‘종이 콘체르토’는 원래 LA필이 탄 둔에게 아동용 음악으로 작곡을 부탁한 것을 본격적인 4악장짜리 관현악곡으로 새로 구성한 것이다. 나는 에사-페카 살로넨의 LA필이 새 것을 찾는 정신을 존경하는데 지난 연말의 ‘트리스탄 프로젝트’에 이어 ‘종이 콘체르토’를 듣는 경험은 정말 신선했다.
코신은 마치 연기하듯 온갖 종이 악기를 다루었다. 우리가 어릴 때 풀피리 불듯 종이를 입에 댔다 물었다 하면서 피리를 불고 손으로 종이를 주무르고 흔들고 찢고 접었다 펴는가하면 입 바람으로 채운 종이 봉투를 터뜨리면서 다양한 자연음을 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때론 악보를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넘겼다 닫았다 하면서 코신의 연주에 액센트를 가미, 청중들의 웃음을 샀다. 마술사가 실크 햇 속에서 다채로운 종이꽃을 뽑아 내듯이 코신은 탄 둔의 종이 음악을 정열적으로 줄줄이 자아냈다.
탄 둔도 말했듯이 그의 ‘종이 콘체르토’는 흙과 물과 종이와 도자기 등의 속에 있는 유기적 성분을 발굴해 내는 작업의 결실 중 하나다. 이 음악 전에 그는 ‘물 콘체르토’를 작곡했다. 나는 이 날 음악을 들으면서 생명체 같은 자연음(특히 바람소리가 주를 이루었다)으로 목욕을 하는 상쾌함을 느꼈다.
나는 탄 둔(47)을 지난 2001년 ‘와호장룡’ 사운드트랙 출반 기념파티서 만난 적이 있다. 머리를 짧게 깎은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는데 매우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현대 음악가 중 가장 뛰어난 작곡가요 지휘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탄 둔은 문혁 때는 시골서 2년간 농사를 지은 뒤 상경, 베이징 오페라의 편곡자 겸 바이얼리니스트로 활동했다. 베이징 중앙음악학원과 콜럼비아대서 음악을 공부한 그는 동·서양적인 것을 함께 표현하는데 관현악곡과 오페라와 영화 음악을 모두 작곡한다. 탄 둔의 관현악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97년 7월1일 홍콩의 본토 귀속을 축하하는 대규모 합창 오케스트라 작품. 이 곡은 하늘과 땅과 인류 등 3악장으로 분류됐다. 그는 또 1999년 12월31일 전 세계서 동시 연주된 뉴밀레니엄 음악도 작곡했다.
휴게시간 뒤 먼저 스트라빈스키의 이국적인 교향시 ‘나이팅게일의 노래’가 연주됐다. 이 곡은 중국 민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어서 ‘종이 콘체르토’와 분위기가 어울렸다. 이 날 피날레는 러시아의 귀재 바이얼리니스트라 불리는 바딤 레핀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바이얼린 협주곡. 모가 날 정도로 정열적이요 혁신적인 연주였다.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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