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고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일괄적으로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고 사죄하며 또 바라고 희망하고 다짐들을 한다. 마치 초등학생이 여름방학 내내 놀다가 개학 하루 전에 안 쓴 일기를 한꺼번에 몰아 쓰는 것처럼.
그런데 정말 세월이란 오고 가는 것일까. 세월은 늘 거기에 있어온 무정형의 진공상태 같은 것. 우리는 그것을 푸줏간에 매달린 소시지를 실로 묶어놓듯 시간의 실로 묶어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다.
5년전 새 천년이 왔을 때 세계는 마치 진짜로 복락만이 있는 새 세상이라도 맞는듯 환희작약 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의 세상은 예나 다름없이 증오와 폭력과 유혈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5년 전에 무엇을 그리 기뻐했던 것일까.
어젯 밤 사람들은 또 다시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새해를 맞았을 것이다. “예전에 알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마음에도 떠올리지 말아야 할까요”로 시작되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늘 기억하리라 다짐하는 노래다.
‘옛날 오래 전에 가버린 것’을 뜻하는 ‘올드 랭 사인’은 사람들이 신년전야에 노래 부르면서 카운트다운으로 새해를 맞는 단골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다듬은 것인데 사람들은 게일어(스코틀랜드 고지대 사람들의 언어)로 된 가사의 내용을 모르면서도 이 노래를 애창한다. “슈드 올드 어퀘인탄스 비 포갓 앤드 네버 브럿 투 마인드/슈드 올드 어퀘인탄스 비 포갓 앤드 데이스 오브 올드 랭 사인” 첫 구절만 부르고 나머지는 “음음음”하며 웅얼거리며 따라 부르면 된다.
이 노래가 신년 전야의 단골 곡이 된 것은 캐나다 태생의 빅밴드 지휘자 가이 롬바르도 때문이다. 롬바르도는 가사 내용이 뒤를 돌아보는 때인 새해에 알맞고 멜로디도 슬프면서도 달래주는 듯해 이 노래를 1929년 처음 뉴욕의 신년 전야파티 때 연주하고 카운트 다운을 한것이 계기가 돼 그뒤로 송구영신의 간판곡이 되었다.
이 안개가 자욱히 낀 듯한 노래는 그후 유명해져 팝, 컨트리, 디스코 및 폴카로 편곡돼 널리 사랑을 받았는데 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G. 클렙스가 부르는 ‘아이 언더스탠드.’ 떠난 님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이 노래는 나도 소시적에 음악감상실에서 자주 애청했던 곡이다. ‘올드 랭 사인’은 또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제목으로 찬송가로도 불려지고 있으며 몇 년 전 영국에서는 주기도문을 이 곡에 맞춰 노래한 싱글이 나오기도 했다.
‘올드 랭 사인’은 이런 내력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할러데이 시즌용 영화에 즐겨 사용되고 있다. 주디 갈랜드가 노래하는 ‘해브 유어 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명작 뮤지컬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Meet Me in St. Louis·1944)에서도 마지막 댄스장면에서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이 노래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두 영화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과 ‘애수’(Waterloo Bridge·1940)다. ‘멋진 인생’은 할러데이 시즌 단골영화로 모든 인간은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이 중요하다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말해 LA타임스는 지난 25일 사설 전체를 이 영화의 주인공 조지와 그의 수호천사 클래런스의 대화 중 일부로 대신하기도 했다.
베드포드 폴스라는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소시민 조지(지미 스튜어트)가 사업에 실패, 강에 투신자살하려는 순간 그의 수호천사 클래런스가 나타난다. 그리고 클래런스는 조지에게 만약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베드포드 폴스가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를 보여준다. 이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를 깨달은 조지와 그의 아내 메리 그리고 둘의 4남매를 둘러싸고 동네 사람들이 ‘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사진)은 볼 때마다 콧등이 시큰해지곤 한다.
‘애수’는 귀족 출신의 영국군 장교(로버트 테일러)와 서민 태생의 발레리나(비비안 리) 간의 못 이룰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신파극. 비극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올드 랭 사인’이 애처롭게 감싸 돌아 눈물 깨나 쏟게되는 영화다.
‘올드 랭 사인’은 ‘지나간 시간들을 위하여, 님이시여, 지나간 날들을 위하여/ 우리는 또한 친절의 찻잔을 들리라, 지나간 시간들을 위하여’라며 끝난다. 세상이 이 노래 가사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피 뉴 이어!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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