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로베르토 알라냐와 안젤라 게오르기우가 서로 주고받으며 부르는 ‘그대의 찬 손’과 ‘내 이름은 미미’는 천상의 화음이었다.
오페라계의 뜨거운 커플로 알려진 부부 가수 테너 알라냐와 소프라노 게오르기우가 공연한 푸치니의 ‘라 보엠’을 관람했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가 공연하는 ‘라 보엠’의 두 주인공 로돌포와 미미역은 알라냐와 게오르기우 그리고 마르코 베르티와 아나 마리아 마티네스의 더블 캐스팅으로 짜여졌다.
나는 말로만 듣던 핫 커플 알라냐와 게오르기우 콤비의 공연날을 골라 갔다. 둘은 미남미녀일 뿐만 아니라 노래도 기막히게 잘 부르며 연기도 잘 했는데 ‘라 보엠’은 둘의 단골 오페라여서 호흡도 절묘하니 맞았다.
특히 검은 머리에 뛰어난 미모와 나긋나긋한 몸매를 지닌 게오르기우의 음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젖과 꿀이 흐르는 미성이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성량도 풍성했는데 듣고 있자니 황홀무아지경. 알라냐의 음성도 따뜻하고 고우면서 볼륨도 넉넉했다. 내가 듣기엔 그의 창법은 벨칸토 스타일. 그래서 오페라를 본 다음 날 이 창법을 잘 구사하던 유시 뵤를링이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을 찾아 들어봤다. 누가 더 잘 부르나 비교해 보고 싶어서였는데 역시 뵤를링이 나았다.
루마니아 태생의 게오르기우는 1992년 런던 코벤트 가든서 미미역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했는데 이번 공연이 LA 무대 데뷔. 알라냐는 시실리안 부모를 둔 프랑스 태생으로 이번이 오페라 전막 공연으로서는 LA 데뷔다. 둘은 ‘라보엠’ 외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마농’ ‘토스카’ 및 ‘일 트로바토레’ 등 여러 오페라에서 공연했다. 이들 오페라와 둘이 부른 듀엣 그리고 아리아 모음곡들은 CD와 DVD로 나와있다.
‘라 보엠’은 19세기 말 크리스마스 이브(그래서 겨울철에 들어야 제 맛이 난다) 파리 라틴쿼터의 고미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연인의 삶과 사랑과 죽음을 그린 로맨틱한 비극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극적으로 서술해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다.
이 오페라는 너무 유명해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몇 년 전에는 ‘렌트’(Rent)라는 이름의 2막짜리 록오페라로 만들어져 빅히트를 했다. 토니상을 받은 이 뮤지컬은 나도 7년 전에 뮤직센터의 아만슨 극장에서 봤는데 대담무쌍한 독창성과 화려하고 원기 왕성한 기운을 지닌 걸작이었다.
그런데 ‘렌트’는 곧 ‘해리 포터’ 시리즈 1, 2편을 만든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에 의해 영화화된다. 영화에서 약물중독자 스트리퍼로 AIDS에 걸린 여주인공 미미 마르케스로는 로사리오 도슨(‘알렉산더’에서 알렉산더의 부인역)이 나온다. ‘라 보엠’은 또 지난해에는 호주 태생의 바즈 루어만 감독(물랑 루지)에 의해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히트하기도 했다.
‘라 보엠’의 주인공은 춥고 배고픈 로돌포와 그의 폐병환자 애인으로 재봉사인 미미 그리고 로돌포의 친구로 화가인 마르첼로와 마르첼로의 바람둥이 술집 가수 애인 뮤제타. 그 유명한 파리의 지붕 밑에 사는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질투와 우정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통속적이어서 오히려 친근감이 간다.
이번 공연은 작고한 영화 감독 허버트 로스가 1993년에 제작한 것을 재연했다. 1막에서 재미있는 것은 미미의 교태. 폐병 걸린 얌전한 처녀라기보다 유혹녀인데 자기에게 반한 로돌포에게 몸을 배배 꼬아가며 애교를 떠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2막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뮤제타가 부르는 월츠(이 노래는 델라 리스가 ‘Don’t You Know’라는 팝송으로 불렀다). 이 날은 에테리 라모리스가 노래했는데 다소 지나치게 고음인데다 오버 액팅. 브라스 밴드의 신나는 연주와 프랑스 3색 국기들이 펄럭이는 퍼레이드 장면이 흥겹다. 이라크전 이후 미국과 원수지간이 되다시피 한 프랑스가 오페라로 LA를 점령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4막은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를 연상케 한다. 하얀 옷을 입고 검은머리를 길게 푼 미미가 동거하던 돈 많은 남자를 떠나 로돌포에게 돌아와 님 앞에서 죽는 것이 비올레타를 닮았다. 미미가 죽은 것을 뒤늦게 안 로돌포가 비명을 지르며 대성통곡하는데 눈물이 찔끔 나온다. 오늘(알라냐와 게오르기우 출연)과 19일 공연이 남았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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