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 집에서도 캐롤이 흘러나오고 자장면 집에서도 캐롤이 울려 퍼진다. 바야흐로 캐롤의 시즌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해마다 찾아오는 할러데이 시즌이건만 나는 이맘때가 되면 여전히 공연히 마음이 들뜨곤 한다. 시사회가 끝나고 라디오(KOST-FM 103.5는 25일까지 계속해 캐롤만 튼다)에서 나오는 캐롤을 들으며 오색전구로 장식된 밤의 베벌리힐스를 지나노라면 대학생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그때 통금이 있던 서울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신년 전야에 한해 통금을 해제했었다.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처럼 밤의 자유를 만끽하러 거리로 몰려나왔었다. 나와 대학 친구들도 음주창가하며 마치 풀어놓은 개떼들처럼 명동거리를 몰려다니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자축했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일찍 찾아오는 어둠과 쌀쌀한 날씨 그리고 저물어 가는 한 해와 맞물려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그것은 미열이 있는 쾌적한 슬픔과도 같다.
얼마전 시사회 때문에 3가와 페어팩스의 파머스마켓 옆에 있는 그로브 샤핑몰 내 그로브 극장엘 갔었다. 연말 인파로 붐비는 광장에 가짜 눈이 내리는 가운데 딘 마틴이 부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왔다. 가짜 눈을 맞으면서라도 시즌기분 내려는 앤젤리노들을 보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시즌 노래들은 수백곡이 넘는데 최근 한 연구기관이 600곡의 노래를 내놓고 라디오 청취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냇 킹 코울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송’이 탑으로 선정됐다.
그 다음으로는 ▲‘어 할리 졸리 크리스마스’(벌 아이브스) ▲‘오 홀리 나잇’(셀린 디옹) ▲‘징글 벨 록’(바비 헬름스) ▲‘해피 크리스마스’(존 레논) ▲‘이츠 비기닝 어 랏 라이크 크리스마스’(자니 마티스) ▲‘로킨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브렌다 리) ▲‘더 리틀 드러머 보이’(해리 시몬코랄) ▲‘렛 잇 스노!’(딘 마틴)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크리스마스’(카펜터스) 등이 탑텐에 올랐다.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영화 ‘할러데이 인’ 주제가로 오스카상 수상)가 빠진 게 좀 이상하지만 코울의 노래는 크리스마스 정취와 썩 잘 어울린다. 멜로디와 가사가 달콤하고 정다운 ‘크리스마스 송’에는 군밤 얘기가 나오는데 코울의 목소리가 군밤 색깔과 맛이 나 노래와 가수가 딱 들어맞는다.
‘밖에 피워 놓은 불 위에선 밤들이 구워지고 잭 프로스트는 너의 코를 얼리네/ 합창단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에스키모처럼 차려 입었네/ 모두 터키 한 마리와 몇 개의 겨우살이가 시즌을 밝게 한다는 것을 알지요/ 작은 아이들은 빨간 눈을 하고 오늘 밤 잠들기가 힘들 거예요/ 그들은 산타가 썰매에 장난감과 선물을 가득 싣고 오고 있는 줄을 아니까요/ 그리고 모든 엄마의 아이들은 정말 순록이 하늘을 날을 줄 아는가 하고 엿보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 단순한 말을 한 살에서 아흔 두 살까지의 모든 아이들에게 주렵니다/ 비록 그것은 여러 번 그리고 많은 방법으로 말해졌지만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참 포근하다.
초컬릿과 벨벳 감촉의 음성을 지녔던 냇 킹 코울(사진)은 1965년 45세로 사망(담배를 하루에 세갑씩 피워 폐암으로 사망했다)한 뒤로도 지금까지 팬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불멸의 가수다. 피아니스트로 먼저 활약한 코울의 가장 유명한 노래는 ‘모나 리사’. 이 노래는 알란 래드 주연의 영화 ‘캐리 대위 USA’(1950) 주제가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이밖에도 ‘투 영’ ‘웬 아이 폴 인 러브’ ‘네이처 보이’ ‘램블린 로즈’ 및 ‘러브 레터’와 ‘언포게터블’ 등이 그의 대표곡들.
특히 ‘언포게터블’은 코울의 딸인 가수 나탈리가 죽은 아버지의 육성과 듀엣으로 불러 그래미상을 받은 뒤로 코울의 부활에 큰 기여를 했다.
며칠 전 시즌을 핑계삼아 신문사 후배 몇 명과 함께 웨스트 LA의 일본동네서 사케와 안주를 곁들인 뒤 노래방엘 갔었다. 우리는 냇 킹 코울의 노래를 골라 나는 ‘모나 리사’를, 한 후배는 ‘언포게터블’을 불렀는데 내 점수가 더 높았다(95점 이상). 그도 그럴 것이 ‘모나 리사’는 내가 대학시절부터 애창하던 곡. 요즘도 나는 기분이 내키면 신비한 미소를 지닌 모나 리사를 노래하곤 한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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