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 애틀랜타를 찾는 관광객들이 안내소를 찾아 제일 먼저 묻는 말은 “타라농장이 어디지요”라는 것이다. 지난 1987년 본보에 연재된 ‘세계 영화기행’ 시리즈의 한 작품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의 무대인 애틀랜타를 방문한 내게 관광안내소의 한 여직원이 알려준 얘기다.
타라농장은 마가렛 미첼 여사의 대하소설 ‘GWTW’의 주인공으로 불같은 성격에 고집불통인 스칼렛 오하라네의 농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틀랜타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타라농장의 소재를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타라농장은 애틀랜타에 있지 않고 LA 인근 컬버시티의 컬버 스튜디오(현재도 있다)에 만들어놓았던 세트였다. 영화 ‘GWTW’의 촬영은 이 스튜디오에서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었던 셔먼 장군의 명령에 따라 애틀랜타가 불바다가 되는 장면으로 시작됐었다. 1938년 12월10일이었는데 스튜디오의 주인이었던 영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이 그동안 ‘킹 콩’등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영화들의 세트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었다.
영화에서 스칼렛의 친구이자 연적 멜라니 해밀턴(사진 왼쪽)으로 나온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88)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녀는 그 때 로스펠리스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밤에 시뻘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겁에 질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었다고 한다. 이 같은 기억은 WB가 최근 ‘GWTW’ 65주년을 기념해 4장의 디스크 특집판으로 내놓은 DVD(40달러)에 수록된 45분짜리 해설 ‘멜라니 기억하다: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GWTW를 회상하다’에 담겨 있다.
‘GWTW’의 주역 중 유일한 생존자로 파리에서 살고 있는 디 해빌랜드는 이 특집판을 위해 LA로 날아와 솔직하고 막힘 없이 영화촬영 경험과 공연한 배우들에 관해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렛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에 대해 “그는 자기 일에 매우 진지해 늘 촬영시간을 지켰고 대사도 모두 외웠었다”고 말했다.
디 해빌랜드는 스칼렛역을 맡았던 비비안 리에 대해서도 “그녀도 클라크처럼 지극히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노력파였다”고 칭찬했다. 디 해빌랜드는 “지금도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3분만 지나면 영화에 매달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궁금해한다”고 ‘GWTW’의 강렬한 흡인력을 경탄한다.
나는 애틀랜타에 갔을 때 애틀랜타 도서관의 ‘마가렛 미첼 기념관’을 방문했었다. 유화로 그린 미첼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녀의 모습에서 멜라니의 모습을 연상했던 기억이 난다. 단아한 모습의 멜라니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내면에 천사 같은 심성을 지닌 여인이다. 렛도 멜라니의 인간성에 감복했었다.
그러나 ‘GWTW’는 뭐니뭐니해도 패배를 인정치 않는 스칼렛이 주인공이다. 소설도 “스칼렛 오하라는 예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일단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를 못했다”며 스칼렛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그리고 끝도 역시 스칼렛의 울부짖음으로 맺어진다. 멜라니의 남편으로 골샌님형인 애슐리(레슬리 하워드-사진에 누워 있는 사람)를 끝까지 못 잊어하는 아내 스칼렛에게 넌덜머리를 내고 렛이 떠난뒤 스칼렛은 이렇게 포효한다. “난 그걸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내일 그를 되찾아올 어떤 방법을 생각할 거야.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 스칼렛의 이 억척스런 낙관론은 차라리 가공스럽기까지 하다.
렛은 “나 당신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울고 부는 스칼렛의 면전에다 대고 “여보, 내가 알게 뭐야”(My Dear, I Don’t Give a Damn.)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었다. 그런데 당시 영화에서는 ‘댐’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어 셀즈닉은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CNN의 창시자 테드 터너가 제일 좋아하는 ‘GWTW’는 오스카 작품, 감독(빅터 플레밍), 주연 여우(비비안 리), 조연 여우(스칼렛네 하녀 매미역의 해티 맥대니얼-최초의 흑인 오스카 수상자) 및 각본과 촬영 등 모두 10개 부문서 수상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불후의 명화가 ‘GWTW’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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