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해 있는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는 매년 12월 한 해의 베스트들을 선정, 파티를 열어 그들을 치하하며 함께 즐기곤 한다. 이 베스트 항목에 들어 있는 것이 생애업적상인데 이는 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다.
내가 LAFCA 회원이 된 것은 1998년이었는데 우리는 그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각본가이자 감독인 에이브러햄 폴론스키(‘육체와 영혼’)를 뽑았었다. 이어 지난해까지 편집자 디디 알렌(‘빨갱이’), 촬영감독 콘래드 홀(‘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스파게티 웨스턴의 음악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와 감독 아서 펜(‘바니와 클라이드’)과 감독 로버트 알트만(‘내슈빌’) 등을 선정해 그들의 업적을 기렸다. 이들 중 폴론스키와 홀은 그 후 세상을 떠났다.
LAFCA는 지난 달 모임을 갖고 2004년도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실수 연발의 얼간이로 유명한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78)를 뽑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코미디판인 ‘정신 나간 교수’(The Nutty Professor·1963-에디 머피 주연의 신판으로 만들어졌다)로 가장 잘 알려진 루이스는 1950년대와 60년대 여러 편의 코미디에서 아기 같은 행동을 하면서 약간 돈 듯한 국외자 노릇을 해 큰 인기를 끌었었다. 짐 캐리의 대선배인 셈이다.
루이스 하면 빼어놓을 수 없는 사람이 가수이자 배우였던 딘 마틴. 둘이 처음 만난 것은 둘 다 별 볼일 없는 연예인 시절인 1946년이었다. 루이스와 마틴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사로 팀을 구성, 애틀랜틱시티의 한 클럽에 데뷔를 했는데 이것이 빅히트를 하면서 둘은 1940년대 말까지 미 최고의 코미디팀으로 군림했었다. 둘은 ‘화가와 모델’과 ‘파드너스’ 등 모두 17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마틴은 침착하고 믿을 수 있는 로맨틱한 가수로 루이스는 약간 모자라는 듯한 순진한 얼간이로 나와(루이스는 늘 자기를 9세난 아이로 표현했었다) 찰떡 콤비를 이뤘었다. 둘은 1956년에 갈라섰다.
루이스는 단순히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각본가와 제작자와 감독으로서도 활약을 했다. 그의 감독 데뷔로 주연도 한 1960년작 ‘벨보이’(The Bellboy·사진)는 프랑스의 위대한 코미디언 자크 타티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걸작이다. 그는 영화제작의 모든 부문에 정통, USC 영화대학원서 강의를 할 정도의 실력자인데 이 강연을 모은 책이 ‘완전한 영화제작자’이다. 루이스는 또 진지한 연구파여서 명코미디언 버스터 키튼의 걸작 무성영화 ‘장군’을 50번이나 보며 키튼의 동작과 타이밍을 관찰했고 제네바로 세 차례나 찰리 채플린을 방문해 코미디에 관해 토론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루이스는 지금도 미국에서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위대한 영화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의 1971년 파리 올림피아 공연은 연일 매진되었고 1984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미영화비평가들이 자기를 얼간이 코미디언으로 취급하는 것을 루이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루이스는 나름대로 미비평가들을 경멸하고 있는데 그는 1981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의 비평가들은 창녀다”면서 “그들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어 댔었다. 이번에 LAFCA가 루이스를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은 뒤 한 동료가 “다른 비평가 단체가 우리를 조롱하겠구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1970년대 슬럼프에 빠진 뒤로도 루이스는 TV 버라이어티 쇼를 통해 팬들과 관계를 유지했다. 루이스의 컴백 작품은 마틴 스코르세이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와 공연한 블랙코미디 ‘코미디의 왕’(1983). 그는 여기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 꿈인 사이코 드니로에게 납치 당한 인기 코미디언으로 나와 명연기를 보여줬다. 루이스는 또 휴머니스트로 지금도 해마다 근위축증환자 돕기 연례 텔레톤을 주최, 매년 수십만달러를 걷어들이고 있다.
LAFCA가 루이스를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과 거의 동시에 묘하게도 패라마운트가 그의 영화 9편과 함께 ‘정신 나간 교수’ 특별판을 DVD로 출시했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벨보이’와 신데랄라 얘기의 남성판 ‘신더펠라’(Cinderfella), ‘심약한 불량배’(The Delicate Delinquent), ‘엉망진창 병원 노무자’(The Disorderly Orderly), ‘심부름꾼’(The Errand Boy), 루이스가 1인7역 하는 ‘가족 보석’(The Family Jewels), ‘난봉꾼’(The Ladies Man), ‘봉’(The Patsy) 및 마틴과 공연한 ‘꼭두각시’(The Stooge) 등이다.
내년 1월13일 센추리시티의 세인트 리지스 호텔서 열리는 시상 만찬에서 루
이스가 뭐라고 넉살을 떨어댈지 지금부터 기대된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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