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내가 군대에 갈 때만해도(또 옛날 얘기하네) 애인이 제대할 때까지 3년을 못 기다리고 달아나는 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1960년대 로맨틱한 발라드 풍의 노래로 틴에이저들의 가슴을 녹여버렸던 바비 빈튼의 노래 ‘미스터 로운리’도 군대 간 사이 달아난 여자를 한탄하는 소리다.
바비가 “내게 편지 한 장 안 오고 난 잊혀지고 말았네/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난 이제 군인이야 고독한 군인이야/나의 뜻과 상관없이 집을 멀리 떠났네/그래서 난 고독해 나는 미스터 로운리/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네”라며 징징 울어대는 ‘미스터 로운리’는 그가 군에 갔을 때 작곡한 노래다.
1964년에 발표된 ‘미스터 로운리’는 15주간이나 팝차트 탑을 지켰는데 당시 대학생이던 나도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 나이 때는 이유 없이 고독을 타던 때여서 나는 당시 광화문에 있던 수련다방에서 이 노래를 신청해 들으며 공연히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지난 일요일 세리토스 공연센터로 바비의 노래를 들으러 갔다. 립싱크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이 날 정도로 맑고 고운 음성을 그대로 지닌 바비는 물론 이 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스터 로운리’를 불러 나처럼 나이 먹은 청중들로 가득 찬 공연장을 노스탤지어로 채워 놓았다. 바비는 “이 미친 세상의 모든 GI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문득 이라크의 GI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팝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될 바비는 팝과 컨트리를 섞어놓은 듯한 청춘을 위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따뜻하고 친밀한 창법으로 풋사랑과 그 것의 희열 그리고 이별과 그 것의 아픔들을 노래해 그의 노래를 들으면 옛 일들을 추억하게 된다.
바비는 이 날 ‘블루 벨벳’(1986년의 동명영화로 인기가 되살아났었다) ‘블루 온 블루’ ‘마이 하트 빌롱스 오운리 투 유’ ‘유어 마이 스페셜 에인절’ ‘플리즈 러브 미 포레버’와 ‘텔 미 와이’ ‘아이 러브 하우 유 러브’ 및 ‘마이 멜로디 오브 러브’등 자신의 히트곡을 끊임없이 열창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대가 좁다고 뛰어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다가 관객들 사이로 내려와 자기를 반기는 팬들과 악수를 나눴다. 바비는 ‘펜실베니아 폴카’를 부르면서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대학생 때 즐겨 듣던 바비를 이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 만나 악수를 하니 옛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내 가슴을 헤집고 달아나는 것 같았다.
바비는 생애 12개가 넘는 골드 레코드를 냈으며 지금까지 팔린 그의 레코드는 모두 7,500만여장이나 된다. 그는 1960년대 10대들에게 프레슬리나 엥겔버트 험퍼딩크보다 더 큰 인기가 있었다. 1962~1972년까지 프레슬리와 시나트라보다 더 많은 넘버 원 히트곡을 낸 청춘의 우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결혼을 하고도 레코드 회사의 종용에 따라 그 사실을 숨겨야 했다. 바비는 “그래야 틴에이저들이 레코드를 많이 샀기 때문”이라며 관객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다. 바비가 비로소 기혼임을 밝힌 것은 레코드가 2,500만장 이상이 팔리고 난 다음이었다.
바비는 자기 노래 외에도 로이 오비슨과 루서 밴드로스 등 남의 노래까지 열창하면서 농담도 꽤나 잘해 이날 객석은 웃음과 추억의 한숨 그리고 박수와 탄성과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이 날 쇼는 바비의 가족 쇼라고 부를만 했다. 2명의 백업 싱어들은 자기 딸이요, 밴드 리더는 자기 아들인데 관객 속에는 아내가 앉아 남편의 인기를 함께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편실베니아의 캐논스버그에서 폴란드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바비는(그의 베스트 셀러 자서전 제목은 ‘폴란드 왕자’다) 16세 때부터 밴드를 구성해 피츠버그의 온갖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그는 여기서 번 돈으로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바비는 만능 연예인으로 이 날도 피아노와 트럼핏,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연주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자신의 TV쇼가 3년간 CBS를 통해 방영됐고 존 웨인과 ‘빅 제이크’와 ‘열차강도’ 등 2편의 웨스턴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바비의 첫 히트곡은 그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지즈 아 레드’이다. 나오자마자 300만장이 팔린 이 노래는 한 남자가 나이를 먹어 과거 자기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간 하이스쿨 스위트 하트와 엄마를 닮은 그녀의 어린 딸을 재회한 뒤 부르는 추억의 노래다. “장미는 붉고 바이올릿은 푸르지요/설탕은 달지만 당신만큼 달콤하지는 않지요”라는 후렴이 속을 태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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