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일찌감치 투표를 했다. 부시와 케리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미국의 대 테러정책이다. 과거에는 주로 경제정책이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가름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경우가 다른 것 같다.
대 테러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제문제에서 케리보다 지지율이 월등히 높은 부시가 시소게임을 하면서도 이 시간 현재 당선 가능성이 다소 높은 것이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부시의 국제 정책은 한 마디로 말해 힘의 정책이다. 이라크 전쟁은 그의 이런 정책의 본보기로 이 전쟁을 놓고 미국은 지금 베트남전 이래 가장 격심한 보수 대 진보의 양극화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은 제쳐놓더라도 미국은 이 전쟁 때문에 국제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얼마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전 이후 미국을 전처럼 좋아하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러시아뿐이고 한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미국의 우방국들이 미국을 싫어하는 폭이 크게 증가했다. 미국은 지금 신고립주의의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해도 되겠다. 세상 모두가 다 날 싫다고 해도 난 힘이 세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식이다.
지금 비록 형식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끝났지만 이라크 내에서는 내전이라고 봐야 할 끊임없는 대미 항전이 벌어지고 있다. 항전하는 측은 미국을 침략국가로 보고 있는데 요즘의 상황은 기독교 대 회교도간의 종교전쟁인 십자군 전쟁의 리메이크를 보는 것 같다. 십자군 전쟁이 장삿속을 노린 싸움이라는 것도 이라크전과 닮았다. 그리고 미국이 한때 자기가 후원한 후세인이 후에 말을 안듣는다고 때려잡은 것은 역시 미국이 키워 놓은 노리에가가 자기말을 안듣자 잡아다 미국내 영창에 가둬 놓은 것과도 닮았다.
얼마전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급진적 진보파인 노움 촘스키 교수에 관한 기록영화를 봤다. 촘스키는 여기서 자기는 9.11사태가 나자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말했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우리는 왜 이런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가에 대해 그 원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촘스키를 비롯한 진보파들은(부시는 케리를 진보파라고 비난하는데 진보적인 것이 무슨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네오콘들이 9.11 사태를 이용해 자신들의 극단적 외교정책을 실시하고 또 민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오늘 개봉되는 기록영화 ‘하이재킹 참사’(Hijacking Catastrophe) 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서나 경험했던 민권 제한의 습기마저 느끼게 된 것이 9.11 사태 이후 미국의 사회 분위기다. 9.11 이후 부시 정부는 툭하면 테러경계령을 발표, 시민들을 겁주었고 요즘은 이 자유의 나라에서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떼 들어가는 수가 있게까지 되었다. 이는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부시 정부의 사고방식이 낳은 후유증의 하나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없고 또 미국이 쉽게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제2의 베트남전이라고 해도 되겠다(아직도 후세인과 알 카에다가 연관이 있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점에서 베트남전 영웅에서 반전투사로 변신했던 존 케리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라크 전쟁을 이슈로 부시와 맞서게 된 것은 역사의 반복성을 보는 듯해 흥미롭다.
해군장교 케리는 베트남전에서 메콩강을 순찰하는 스위프트 보트의 지휘관으로 무공을 세워 은성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제대 후 이 전쟁의 무모함을 깨닫고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베테런스’(VVAW)의 지도자로 변신한다. 케리는 27세 때 군복을 입고 상원외교관계위 청문회에 출석, 베트남전을 비판하는 명연설을 해 반전투사의 스타로 부상했다(사진). 지금 상영중인 케리에 관한 기록영화 ‘강을 거슬러: 존 케리의 긴 전쟁’에서 케리의 이런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지금의 케리가 젊었을 때의 케리처럼 감동적이요 효과적으로 어필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안타까워했다.
케리의 오랜 친구 조지 버틀러가 만든 이 영화는 “역사는 반복되나 인간은 그 것의 교훈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로 끝난다.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의 결과에 고통받게 마련이고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도 계속 될게 분명하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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