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여기자상
매년 10월 이맘때쯤이면 우리 신문사 여기자들은 회장님과 편집국장님을 모시고 베벌리 윌셔 호텔에서 열리는 성대한 만찬행사에 참석한다.
국제여성언론재단(IWMF)이 주최하는 ‘용기있는 언론인상’(Courage in Journalism Awards) 시상식이 그것으로, 대상이 모두 여성이므로 우리는 그냥 여기자상이라고 부른다.
한국일보는 파트너인 LA타임스와 함께 후원언론사로 수년째 참석하고 있는데, 만찬장을 가득 채운 30여개의 테이블(최소 5,000달러 짜리다) 중 동양계 언론은 언제나 우리 테이블이 유일하다.
최고급 호텔이라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곳에 가면 주류 언론에서 내노라하는 기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놀드 슈와제네거 주지사의 아내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매년 참석하는 단골 유명인사. 몇해전에는 여배우 섀런 스톤이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혼한 필 브론스타인(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아내였을 때였다.
올해는 CNN의 주디 우드러프가 사회를 보고 카니 정, 콜린 윌리엄스(NBC), 존 캐롤(LA타임스)이 시상자로 참석했으며, 페르난도 엔리케 브라질 전대통령이 바로 우리 옆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미디어계의 거물 배리 딜러와 패션계의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도 나오는 행사니 그 규모와 권위를 더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시상식에 지난 4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는데 내가 여기 간다고 할 때마다 남편이 묻는 말이 있다.
“당신은 언제 그런 상 타?”
하도 답답해서, 그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상을 탈 수 있는지 이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심지어 우리 편집국의 남기자들도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무슨 여기자 클럽이나 모임에 놀러 다니는 줄 아는데, 모르는게 무슨 죄겠나, 가르쳐야지.
내가 처음 참석한 2001년 시상식에서 상을 탄 사람들은 콜롬비아, 수단, 스페인의 여기자들이었다.
콜롬비아 ‘엘 에스펙타도르’지 기자인 지네스 베도야 리마는 우익반군의 지도자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납치돼 강간과 고문까지 당했으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이들의 좌익 살해음모를 추적 보도했다. 마드리드 ‘엘 문도’지의 카르멘 구루차가는 ETA 극단주의자들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두아들과 함께 집에서 폭탄세례를 받았고 며칠에 한번씩 거처를 바꿔야할 정도의 위험 속에 일하고 있다.
2002년 시상식에서는 짐바브웨, 러시아, 캐나다 기자가 상을 탔다. 짐바브웨의 샌드라 나이라 기자는 그 나라 최초의 여성 정치부 기자로서 부패한 정부와 대통령을 고발하는 기사를 써서 고소 당하고 그녀와 가족 모두가 살해 위협에 떨고 있다.
체첸 특파원인 러시아의 아나 폴리트코브스카야 기자는 참혹한 전장을 수없이 드나들며 러시아군의 민간인 고문 학살등을 보도함으로써 체포, 구금, 살해위협, 망명 등을 거쳐야했다.
작년에 상을 탄 우크라이나의 타티아나 고리야초바 기자는 귀가도중 괴한으로부터 얼굴에 염산 세례를 받았다. 로컬선거 기사에서 현직에 도전하는 후보를 공정하게 다룬 기사를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많은 수술을 받았으나 아직도 한쪽 눈의 시력이 온전하지 않다.
올해는 나미비아와 파라과이, 알제리아의 용감한 여기자들이 수상했는데 알제리아의 샐리마 틀렘카니(가명)는 내란 중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저지른 강간, 살해 등을 보도하면서 암살자 명단에 올랐다. 명단에 오른 언론인 22명중 이미 10명이 암살됐고, 그녀는 또 정부의 공금유용을 고발한 기사로 국방부와 내무부로부터 소송을 당한 상태다.
우리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곳에 살면서 때론 들을 필요 없는 뉴스와 정보들에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고, 알아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들이 수없이 많다. 이런 곳은 특히 여성과 마이노리티의 인권이 전혀 없는 독재국가들이므로, 그런 환경에서 소리를 내는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 하겠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를 바꾸는 것이고, 미국의 IWMF라는 단체는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여기자들을 찾아내 지원하고 용기를 더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보, 나 이런 상 타는 여기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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