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오면 부질없이 쓸쓸해져서도 좋지만 클래시칼 뮤직의 겨울시즌이 열려서 더욱 좋다. 실제로 쏟아져 흐르는 음의 한 가운데서 소리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창조적 노고마저 느끼게 되는 희열이다.
지난 주말 LA 필과 LA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올 겨울시즌이 함께 개막됐다. 토요일에는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LA 필의 연주를 그리고 일요일에는 UCLA 로이스 홀에서 LA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다. 여름 내내 가슴에 쌓여 있던 홍진을 씻어내는 신선한 시간이었다.
지난해에 문을 연 디즈니 홀에 가 본 사람들은 무대 뒤에 대형 프렌치 프라이스처럼 생긴 여러 개의 파이프를 목격했을 줄 안다. 디즈니 홀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오르간 제조자 마누엘 로살레스가 공동으로 디자인해 독일서 만든 LA 필의 또 다른 명물 파이프 오르간이다(사진).
나무와 쇠로 된 6,134개의 파이프는 내가 보기엔 음악의 혈관이요 힘줄 같다. 마치 오르간의 내장을 밖으로 드러내 보인 것 같은 모습인데 커브진 꿀빛의 나무 파이프들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육감적이면서도 우아하다. 파이프의 가장 긴 것은 전신주 만하고 짧은 것은 연필 만하다고 한다. 지난해에 문을 연 디즈니 홀의 파이프들이 1년 뒤에야 소리를 낸 것은 그동안 6,134개의 파이프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튜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오르간은 악기의 왕”이라고 말했듯이 오르간은 소리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을 모두 갈 수 있는 음의 총집합체 같은 악기.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있는 해설시간인 ‘업빗 라이브’에서 로살레스가 “오르간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시즌 개막 연주작품은 오르간의 위용과 막강한 소리를 뽐낼 수 있는 곡들로 선정됐다. 지휘는 에사-페카 살로넨.
첫 곡은 바하의 그 유명한 즉흥 환상적인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이 곡은 오르가니스트였던 맨손 지휘자 스토코우스키가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한 것이 더 많이 연주되는데 이것이 디즈니의 만화영화 ‘팬테이지아’에서 사용되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졌다. 강력하게 압도해 오는 첫 세 시작음부터 진짜로 겁나는 곡으로 이 음악은 영화 ‘해저 2만리’와 ‘대경주’ 등에서도 사용됐을 뿐 아니라 셀폰 신호음으로 사용될 만큼 대중화됐다. 소위 ‘미친 의사’(Mad Doctor)가 즐겨 치는 곡이기도 하다.
이어 연주된 바하의 4분짜리 ‘푸가’ G단조는 살로넨의 음악성과 지휘 스타일을 잘 보여 준 고운 곡이다. 이어서 지난해에 사망한 미국인 작곡가 루 해리슨의 추상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오르간과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됐다. 박력 있는 야수파 재즈음악의 느낌을 주었다.
이날 음악회에서 우연히 친구 C와 그의 부인을 만났다. 호기심이 보통 많지가 않은 질문파인 C의 부인은 휴게시간에 오르간 연주자인 타드 윌슨에게 무대 위 오르간의 소리가 어떻게 파이프로 옮겨지느냐고 물었다. 윌슨은 “컴퓨터처럼 둘이 연결돼 있다”면서 “컴퓨터의 경이”라고 친절히 일러주었다.
이 날의 피날레는 생상스의 교향곡 제3번 ‘오르간’.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던 생상스의 이 아름다운 곡은 내가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이다. 힘과 서정성과 우수를 고루 갖춘 음악으로 특히 마지막 4악장의 코다는 가히 광란에 가까운 열락의 열기를 발산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데보라 보다 LA 필 사장이 ‘업빗 라이브’ 시간에 말한 대로 구두를 벗고 발을 나무바닥에 올려놓았다. 가슴 속 갈비뼈 안이 공명하는 전율을 경험했다.
나는 이날 오르간 음악의 경탄할 힘을 겪기는 했지만 음악성을 기대만큼 즐기지는 못했다. 연주자의 연주가 미흡했던지 아니면 아직 오르간의 소리가 길이 안 들어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아쉬웠다. 어쩌면 새로 만든 디즈니 홀이 아직 음들로 충분히 젖어 있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상임지휘자 제프리 카헨이 지휘한 LA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첫곡으로 멘델스존의 로맨틱한 ‘헤브리 데스’서곡을 연주한데 이어 라벨의 영원한 어린이들을 위한 ‘엄마 거위’조곡을 들려줬다. 피날레는 베토벤의 바이얼린 협주곡. 노르웨이의 젊은 바이얼리니스트 헤닝 크라게루트가 기교를 부리며 연주했는데 베토벤의 폭을 채 따라가지는 못했다. 로이스홀의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좋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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