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그리스는 호머와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을 배출한 나라다. 신화와 민주정치의 발상지로 하얀 페인트를 칠한 집들과 흑의의 여인들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리스를 순간적으로 인식케 해주는 것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영화음악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1964)의 첫 시작 단 두음이다. 그리스의 고유 현악기 부주키스가 “따 란”하면서 뜯는 첫 두음을 듣는 즉시 우리는 그리스를 생각케 된다. 그리고 이어 “따란 따라라란”하며 계속되는 멜로디를 듣노라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리스 촌사람 조르바의 모습이 떠오른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조르바는 그리스를 가장 잘 상징하는 두 가지라고 하겠다. 지난 일요일에 벌어진 남자 100m 달리기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스테디엄에 이 음악이 울려 퍼지니 관중들이 모두 음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희랍인 조르바’와 ‘일요일은 참으세요’ 그리고 ‘페드라’와 ‘Z’는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 그리스 영화다. 특히 코스타-가브라스가 감독한 강렬한 정치 스릴러 ‘Z’(1969)는 그 내용이 당시 군사독재에 시달리던 한국의 실상과 너무나도 닮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사회 혼란기의 진보적 정치인(이브 몽탕)을 극우 테러단체가 살해한 뒤 이 사건의 후유증을 빌미 삼아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는 내용이다. 당시 그리스는 영화개봉 2년 전 4명의 대령이 주도한 쿠데타의 산물인 파시스트 정권 하에 있었는데 당연히 ‘Z’는 군정이 무너지던 1974년까지 국내서 상영금지 됐었다. 그리스의 군사정권 훈타가 시민들의 긴 머리를 자르고 비틀즈의 노래도 못 듣게 한 것도 박정희 시대의 코미디와 똑 닮았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Z’의 음악도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했는데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당시 가택연금의 상태에서 이 음악을 작곡했다.
올림픽을 맞아 폭스가 출반한 ‘희랍인 조르바’ DVD를 다시 한번 봤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을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지식인의 행위 없는 고뇌의 허구성과 무식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촌사람의 낙천성을 흑백 대조가 뚜렷하게 아름다운 촬영(오스카상 수상)과 파도 치는 리듬과 풍성한 멜로디를 갖춘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힘차고 너그럽게 대조한 명작이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준 크리트섬의 폐광을 재건하려고 이 섬을 찾은 영국인 작가 바질(앨란 베이츠)과 그의 하인인 조르바(앤소니 퀸)의 따뜻한 인간관계의 이야기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책 많이 읽고 유식은 하나 행동할 줄 모르는 바질이 어려운 말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흙의 인간 조르바에게 인생에 관해 한 수 배운다는 점. “생각을 너무 많이 해” 탈인 바질은 ‘스승’ 조르바로부터 행동과 웃음을 전수 받고 비로소 ‘산’사람이 된다. 조르바와 바질이 서로 상대방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이 신생을 축하하면서 정열적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감동적이다. 그리스 얘기이니 만큼 비극이 없을 수 없어 자살과 복수와 살인도 있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낙천적이요 긍정적이다.
이 영화는 퀸의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다. 그는 멕시칸이지만 이 영화 때문에 그리스인이 되다시피 했다. 말과 제스처와 웃음이 모두 큰 조르바는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본능적인 행동의 인간이다. 그래서 그는 바질의 고뇌에 침을 뱉는다. 조르바는 또 삶의 경험에서 얻은 예지와 생존기술을 기민하게 발휘할 줄 아는 기능인이다. 그러나 조르바의 가장 큰 매력은 생명력과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그의 크고 넉넉한 가슴이라 하겠다. 결국 이 영화는 생명예찬의 얘기다.
아테네 올림픽에 맞춰 데카(Decca)는 테오도라키스(1925년생)가 영화음악을 근간으로 후에 작곡한 ‘조르바스’(Zorbas) 발레조곡 발췌부분과 그의 또 다른 발레조곡 ‘카니벌 3소품’(3 Pieces from Carnibal) 등이 담긴 CD(사진)를 출반했다. 음악보다 정치활동으로 더 잘 알려진 테오도라키스의 낭만주의가 흥건히 배어 있는 힘차고 아름다운 음반이다. 감정의 모든 색채와 결을 갖춘 정답고 흥겨운 음악인데 샤를르 뒤톼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교향악단이 연주한다.
조르바는 자기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바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보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데 딱 하나 못 가진 게 있어요. 그건 광기란 말이요.” 그래 맞다. 진짜로 살고자 한다면 미쳐야한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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