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번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린 채로 놔두질 못하고 그것을 자꾸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잃어버렸거나 떠난 것들을 그냥 잃어버리고 떠난 채로 놔두는 것도 마음의 한 호젓한 여유일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우리는 모두 집념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 중에서도 사무치도록 아까운 것이 사랑 그 중에서도 첫 사랑이다. 버나드 쇼가 ‘첫 사랑이란 약간의 어리석음과 많은 호기심일 뿐’이라고 말했듯이 그것은 어쩌면 철없는 아이들 장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잃어버린 첫 사랑을 추억하기를 즐겨한다.
얼마 전 USA투데이를 읽었는데 첫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고 수십년만에 재회한 옛 연인들이 재결합하는 경우도 지난 10년 내 1,000쌍에서 두배가 늘어났다고 한다. 마음이 하는 일이란 이렇게 놀라운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이런 풍조는 인터넷 때문인데 현재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찾는 클래스메이츠 닷컴 및 리유니언 닷컴 등 여러 개의 웹사이트에 등록한 사람의 수만도 수백만에 이른다는 것이다.
연애편지도 인터넷으로 쓰고 고백성사도 인터넷으로 한다더니 이젠 잃어버린 사랑도 인터넷으로 찾는 시대가 되었다. 이에 비하면 영화 ‘잊지 못할 사랑’에서 케리 그랜트가 약속 장소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나타나지 않은 데보라 카를 오랫동안 못 잊어하다가 뒤늦게 전화번호부를 통해 찾아낸 것은 정말 구식으로 로맨틱하다.
신문이 보도한 재결합한 잃어버린 사랑의 예 중에 그야말로 영화나 소설 같은 경우가 그렉 베네데티(49)와 베키(48)의 그것이다. 둘은 30년 전 하이스쿨 스위트하트였는데 1999년 베키가 인터넷을 통해 그렉을 찾아냈다. 베키는 그렉에게 자신의 변치 않은 사랑을 고백했고 그렉도 마찬가지. 둘은 그래서 각기 서로의 배필과 이혼하고 2002년에 결혼, 지금 뉴저지 해돈필드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둘의 수십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첫 사랑의 불길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둘이 각기 버린 아내와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림받은 둘은 청천벽력을 맞은 셈일 텐데 이렇게 남을 비참하게 하는 독소마저 품은 것이 사랑의 성질인가 보다.
첫 사랑이건 두번째 사랑이건 간에 잃어버린 사랑은 아프다. 그래서 짐 캐리는 기억에서 자기를 지워버린 연인 케이트 윈슬렛을 자신의 기억에서도 지워버리려고 했다(‘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 세상에 지천으로 깔린 것이 잃어버린 사랑이어서 이것은 수많은 책과 노래와 영화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사랑을 잃고 앓는 상사병에 관한 영화로 으뜸이라 할 만한 것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이 원작인 ‘폭풍의 언덕’(사진). 주어다가 기른 하인 히드클리프(로렌스 올리비에)와의 사랑을 못 이룬 주인집 딸 캐시(멀 오베른)는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마는데 자기 이름을 부르는 캐시의 혼령에 시달리다 못해 히드클리프도 뒤따라 죽는다. 뼈가 저며들도록 아프고 아름다운 귀신 로맨스 영화다.
크리스토퍼 리브도 영화 ‘시간 속 어느 곳에’서 시간여행을 하며 과거로 돌아가 아름다운 연극배우 제인 시모어를 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는다. 실수로 현재로 돌아온 그는 잃어버린 시간 속 연인을 못 잊어 식음을 전폐하고 창 밖을 통해 호수만 바라보다가 죽고 만다. 그야말로 죽어도 좋은 것이 사랑인가 보다. 또 지금 상영중인 ‘노트북’도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가는 영화다. 유명 인사들로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재결합했다 헤어졌다 해 화제를 나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리즈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나탈리 우드와 로버트 와그너 그리고 찰스 왕자와 카멜라 파커 보울스가 그들이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이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데는 문제점도 따른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첫 사랑을 찾아보다가 막상 재회하면서 사랑의 불길이 재점화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렉과 베키 베네데티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그래서 칼스테이트 새크라멘토의 심리학 교수 낸시 캘리쉬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전에 과연 내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 어쩌면 차라리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채로 남겨 놓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이란 또한 아름다운 것이니까.
박흥진<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