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후배가 “미국에 오니 아메리칸 커피가 없다”고 투덜대었다.
그의 말인즉, 이태리에 가면 이태리 타월이 없고, 터키에 가면 터키탕이 없으며, 비엔나에서는 비엔나 커피를 마실 수 없고, 프렌치에서는 프렌치 키스를 해볼 수 없다더니, 막상 아메리카에 오니까 아메리칸 커피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매우 일리 있는 그의 지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정통 아메리칸 커피를 그리워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여년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한약같이 진한 한국식 커피에 맛들여있던 나는 숭늉같이 연하고 싱거운 미국 커피를 처음 마셔보고 깜짝 놀랐었다. 미국에 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될 줄 알았는데 미국식 커피라는게 너무나 물 같아서 커피 맛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아메리칸 커피의 구수하고 은근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 나는 더 이상 진한 커피를 찾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한국에 갔을 때 무식하게 진한 커피가 나오면 상을 찌푸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정겨운 아메리칸 커피, 몇잔을 마셔도 부담없는 미국의 커피가 요즘 미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아메리칸 커피를 없앤 주범은 ‘스타벅스’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언제부터 스타벅스가 동네 코너마다 들어서기 시작했는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스타벅스가 등장한 이후로 미국의 커피 맛이 멋대가리 없이 쓰고 진해지기 시작했다.
전에 스타벅스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에게 “미국 커피는 원래 진하지 않은데 왜 스타벅스는 그렇게 진한 커피를 만들어 파느냐?”고 물었더니 그때 되돌아온 대답이 나를 섬뜩하게 하였다.
“스타벅스는 미국인들의 커피 입맛을 아예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스타벅스에서 진한 커피만 계속 끓여 팔면 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 맛에 길들게 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미국인의 커피 기호가 바뀐다는 말이었다.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곳곳에서 보게 된다.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어딜 가나 커피 맛이 진해져서 아메리칸 커피를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실제로 우리 신문사가 이용하는 커피 빈 사(Coffee Bean & Tea Leaf)는 스타벅스와 경쟁업체인데 작년부터 커피 한 팟을 끓이는 원두가루 한 봉지의 양을 1.5배로 늘였다. 따라서 그 분량대로 커피를 내리면 맛이 전보다 훨씬 진하기 때문에 다들 조금씩 덜어내어 끓이는 수고를 하고 있다.
무조건 순하고 흐린 커피가 맛있다는 말이 아니다. 에스프레소처럼 쓰고 진한 커피는 그 맛대로, 카푸치노는 또 카푸치노 맛으로 마시는 것인데, 아메리칸 커피가 유럽식 커피처럼 변해가는 것이 커피 애호가로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커피에 조금 까다롬을 피는 사람 중 하나인데, 진하고 흐리고를 떠나, 또 브랜드를 떠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금방 끓여낸 커피이다.
대학시절 명동 뒷골목에 가면 ‘꿈과 같이’(이름이 명확치 않다)라는 커피전문 다방이 있었다.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한 이 지하다방은 손님 테이블 앞에서 금방 커피를 끓여주는, 당시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물론 커피값이 조금 비쌌지만 그래도 직접 우리 테이블로 가져온 커피 브루어에서 투명 비이커를 통해 커피가 울컥울컥 우러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향기를 맡으며 갓 끓여낸 커피를 마시는 맛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이후 깨달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금방 끓인 커피’라는 것이다. 가격이 일반 원두의 3배나 되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도 끓인 뒤 10분 이상 지나면 그 향과 맛의 진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맛있는 커피라 하여 마셔본 브랜드들은 게발리아(Gevalia), 피츠 커피(Peets Coffee), 딘 앤 델루카(Dean & Deluca), 알레그로(Allegro), 시애틀즈 베스트(Seattle’s Best) 등이 있는데 내가 가장 맛있게 마셨던 커피는 오래전 한인타운 6가와 베렌도에 ‘코피아’를 처음 오픈했던 주인이 직접 볶아 만들었던 ‘코피아 하우스 블렌드’와, 한 친지가 맛보라고 가져다준 ‘트리니다드’(Trinidad)라는 커피였다. 코피아는 커피샵 주인이 바뀌면서 커피맛도 바뀌었고, 트리니다드는 일반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둘다 지금은 맛보기 힘든 커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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