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차대전 때 실종된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였던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사진)의 비행기 잔해가 확인되었다는 뉴스를 읽고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책 ‘어린 왕자’를 읽어보았다. 나는 이 상징과 암시로 가득 찬 묘하게 매력적인 글을 읽으면서 또 다시 이 책이 어렵다는 사실을 느꼈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읽으면서 숨을 가빠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영혼의 철학인 책은 모든 어른들에게 아이처럼 되라고 이르고 있는데 결국 나는 어른임을 버리지 못해 글을 무거워하는 것일 테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가 있는 ‘작은 왕자’는 겹겹으로 의미를 가진 시요 교훈서이다. 상상과 환상, 우의와 신비가 곳곳에 깔려 있어 읽노라면 별천지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책은 생-텍쥐페리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자기 삶의 예언서 같기도 하다. 생-텍쥐페리는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코르시카를 이륙, 정찰비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바다에 추락했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데 이밖에도 자살이나 사고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런데 최근 지난 2000년 마르세유 해안서 발견된 록히드 라이트닝 P38기의 잔해에 적힌 일련번호가 생-텍쥐페리 비행기의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비행사 시절 아프리카 사막 상공을 여러 차례 비행했던 그는 사막을 무척 좋아했다. 1935년에는 파리서 사이공까지 비행을 시도하다가 이집트 사막에 추락, 5일간이나 걸어 베두인 대상에 구출된 적도 있다.
그가 44세라는 짧은 삶을 묻은 바다는 사막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둘이 다 무한하고 아름답고 고요하며 고독하고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무진장으로 안고 있는 것이 똑같다. ‘어린 왕자’의 비행사가 사하라 사막에 추락한 다음해 생-텍쥐페리는 바다에 추락,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갔다. 둘은 분명히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둘의 대사를 보면 이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관계 맺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는데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어서 마음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숫자를 좋아하고 언제나 설명을 해 줘야 하는 어른들은 ‘보아 구렁이 속의 코끼리’를 모자로밖에 볼 줄 모른다는데 있다. 골프와 정치와 넥타이 등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그들은 순수와 상상력이 결핍돼 겉으로 보이는 것밖에 볼 줄을 모른다.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얼 찾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한때 그랬듯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텍쥐페리는 동심을 예찬하고 있다.
그는 사막과 함께 밤과 낮, 산과 바다와 폭풍을 좋아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그가 고독한 비행을 하면서 사랑하게 된 것들이다. 특히 사막은 샘을 감추고 있어 아름다운데 어린 왕자가 비행사를 샘으로 안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혼의 각성을 경험토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 책은 때묻고 목마른 영혼을 목욕시켜 주고 또 해갈시켜 주는 잠언서이다.
삽화를 보면 어린 왕자는 금발에 금빛 머플러를 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책에는 금빛이 많이 나온다. 사막과 밀밭과 5억개의 작은 방울들인 별들 그리고 어린 왕자가 몹시 슬플 때면 좋아하는 해지는 풍경 등.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가 지구를 떠나면서 쓰러질 때 그의 발목께서 나온 한줄기 빛의 색깔도 노랗다. 황금빛은 재생을 당겨주는 불꽃의 색깔이다.
생-텍쥐페리는 또 고독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닌 곳을 비행하면서 그가 영육으로 들여 마셨을 고독의 부피가 느껴진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허공에서의 고독의 맛이 더욱 짭짤하겠다. 그같은 고독을 반추하면서 그가 흘린 눈물의 나라야말로 신비로울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여러 차례의 추락으로 중상을 입고도 비행을 사랑한 행동의 작가였다. 앙드레 말로와 어네스트 허밍웨이처럼. 그의 “사랑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에서도 실존적 행위감이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북함은 이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어린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의 무게일 것이다.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다른 나라에서 와야겠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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