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탐슨은 “슬픈 영화는 늘 날 울려요”라고 노래 불렀는데 나도 슬픈 영화를 보면 운다. 그런데 사실 수는 영화가 슬퍼서 운 것이 아니라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총천연색 만화영화가 상영될 때 자기 애인이 다른 여자와 함께 극장에 들어와 바로 자기 앞에 앉아 입맞추는 것을 보고 운 것이다.
지금 미 전국의 극장은 ‘노트북’(The Notebook·사진)이라는 감상적인 슬픈 영화 때문에 눈물 바다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슬픈 영화들인 ‘애정의 조건’ ‘러브 스토리’ ‘비치스’ 및 ‘철목련’들처럼 손수건이 적어도 4장은 필요한 영화다.
이야기는 나이 먹은 남자가 치매로 양로병원에 입원한 나이 먹은 여자에게 노트북에 적힌 내용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노트북의 내용은 젊은 두 연인이 부모의 반대와 2차대전으로 인해 헤어져 서로 제 갈 길을 가다가 정열적으로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개봉됐는데 흥행도 잘 돼 주말 사흘간 모두 1,3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나는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온 몸이 경직될 만큼 고생을 했었다. 뒤에서는 한 여자가 아예 코를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사람들이 슬픈 영화를 보고 우는 것에 대해 코네티컷의 웨슬리안 대학의 영화학 교수 지닌 베이신저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의 영화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생활 및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과 죽음 같이 우리가 잘 아는 것과 우리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이 찾아가 울게 마련이다.”
할리웃은 속칭‘위피’또는 ‘티어저커’라 불리는 슬픈 영화들을 황금기 때 많이 만들었었다. 그대표적인 영화가 둘 다 베티 데이비스가 나오는 ‘어두운 승리’(Dark Victory·1939)와 ‘자, 항해자여’(Now, Voyager·1942)이다. ‘어두운 승리’는 불치의 병을 앓는 사교계 여성의 이야기요 ‘자, 항해자여’는 유부남과의 못 이룰 사랑을 하는 여인의 이야기다. ‘자, 항해자여’는 데이비스가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면서 연인인 폴 헨리드에게 “우리 달을 요구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콧등이 시큰해진다.
‘위피’는 대부분 멜로 드라마로 주로 여자들이 빗나간 사랑이나 가족의 상실 등으로 고통을 당하는 내용들이 많다. 사랑과 죽음이 이들 영화의 두 주요 카테고리로 ‘위피’는 여자들의 영화라고 하겠다.
‘위피’의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는 ‘카사블랑카’ ‘짧은 만남’(Brief Encounter),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 ‘러브 스토리’ ‘우리들의 지나간 시절’(The Way We Were) 및 ‘고스트’ 등은 모두 연애영화다. 사랑처럼 아프고 슬픈 것도 없는가 보다.
사람들은 왜 굳이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것일까.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베이신저 교수는 “사람들은 때로 다른 사람들이 상실과 고통과 못 이룰 사랑 등을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감정과 느끼는 것 안으로 빠져 들어가고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뒤로 지금까지도 슬픈 영화를 보면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운다. 나는 ‘노트북’을 보면서 울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힘들여 울음을 참아야 하는가.’
세상이 너무나 빤질빤질하게 세련되어져 우리는 어느덧 감정 표현을 수치스럽게끔 생각하게 됐다. 감정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도 별로 아름다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또 표현하기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하겠다.
내가 볼 때마다 우는 또 다른 영화는 연애하고는 상관없는 웨스턴 ‘셰인’이다. 어두운 밤 말을 타고 그랜드 티튼 산을 향해 떠나가는 셰인의 등에 대고 어린 조이가 “셰인 컴백”하고 소리 치니 메아리가 “셰인 컴백”하고 되받아 외친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물기가 고인다.
그리고 사람과 짐승간의 애정을 가슴 사무치게 그린 ‘일년생’(The Yearling·1946)과 이탈리아 영화 ‘움베르토 D’(Umberto D·1952)도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울고 말 명작들이다. ‘실컷 울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노트북’을 보면서 마음껏 울어들 보시기를 권한다. 해브 어 굿 크라이!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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