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느와르(film noir)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어두운 영화 또는 검은 영화라는 뜻이다. 이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니노 프랭크. 그가 1946년에 쓴 수필에서 미국의 범죄영화 ‘머더, 마이 스위트’(Murder, My Sweet·1944)를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라고 명기하면서 하나의 장르 명칭이 되었다. 이 장르는 프랑스에서 1960년대 장-뤽 고다르와 프랑솨 트뤼포 같은 감독들의 ‘누벨 바그’(새 물결) 영화들을 통해 큰 인기를 탔었다.
필름 느와르는 2차대전 후 겉으로는 걱정이 없으나 안으로는 냉전과 핵의 공포를 의식해야 했던 미국 시민들의 불안한 심리와 정부를 비롯한 제도에 대한 불신과 부정성과 허무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 초까지 할리웃에서 양산된 범죄영화들이 이 장르에 속 한다.
이 장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당시 유행한 싸구려 범죄소설들이었다. 미키 스필레인, 레이몬드 챈들러 및 대쉬엘 해멧 등이 창조해낸 사립 탐정들인 마이크 해머, 필립 말로 그리고 샘 스페이드 등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냉정하고 잔인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쫓는 범죄자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미래가 없는 절망적인 인간들이다. 이들 소설 속 사립탐정들은 험프리 보가트와 로버트 미첨 그리고 딕 파웰 등에 의해 스크린의 사나운 외톨이들로 환생했었다.
필름 느와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다. 이 영화들은 철저히 냉소적이요 염세적인데 종말은 모두 처절한 비극으로 끝난다. 고독이 너절한 빨래처럼 내 걸린 해피 엔딩이라고는 없는 세상이 사실적이면서도 신파적이어서 아슬아슬한 애착이 간다.
필름 느와르에 관한 책을 여러 편 쓴 에디 멀러는 이렇게 말한다. “느와르는 모든 것이 스타일이다: 삐딱한 카메라 각도, 짙은 그림자, 로맨틱하고 저주받은 운명이 내려앉은분위기, 늘 가물거리는 흑백 대조가 뚜렷한 화면. 그리고 비가 씻어낸 거리, 중절모를 쓴 사나이들, 우아한 가운을 입고 고급 승용차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여자들… 필름 느와르는 올-아메리칸 성공담의 뒷면이다. 프로그램을 따라가면 자신들이 갈망하는 것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필름 느와르의 남자들은 범죄와 부패로 얼룩진 도시에 숨어살다시피 하는 야비하고 거칠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둡고 야수적이고 폭력적인 하루살이들이요 바퀴벌레들이라고 하겠는데 그들의 세계는 감정이 말끔히 증발된 암흑의 세계다. 그 세계는 인정사정 없는 조야함과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무감이 가득한데 그런 것들에서 원시적인 육감성마저 느끼게 된다.
필름 느와르의 남자들이 사납지만 어리석은 반면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한결같이 계산적인 요부들이다. 이 ‘치명적인 여인’(femme fatale)들은 늘씬한 몸매에 긴 금발을 늘어뜨린 채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봉 같은 남자들을 유혹해 그들을 멸망시키곤 한다. 왕년의 글래머 걸들인 에이바 가드너, 리타 헤이워드, 라나 터너 및 바브라 스탠윅 등이 이 요부의 대표적 스타들. 그들의 자극성은 식충식물의 끈끈이와도 같아 벌레 같은 남자들은 자멸하듯이 요부들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결국 남자와 여자는 모두 황천으로 간다.
워너 홈 비디오(WHV)는 오는 7월6일 걸작 필름 느와르 5편을 출시한다.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1950)-100만달러 상당의 보석을 훔친 범죄자들의 범죄모의와 한탕과 배신. 초기의 마릴린 먼로가 나온다. 사실적인 강건한 작품.
*‘머더, 마이 스위트’-챈들러의 소설 ‘페어웰 마이 러블리’가 원작. 사립탐정 말로(딕 파웰)가 협박과 살인사건에 말려든다. 강펀치 같은 영화.
*‘셋-업’(The Set-Up·1949)-갱이 조작한 내기 권투경기에 협조를 거부하는 한물간 선수(로버트 라이언)의 처절한 드라마.
*‘과거로부터’(Out of the Past·1947)-갱 두목(커크 더글러스)이 자기를 총으로 쏜 뒤 4만달러를 갖고 튄 정부(제인 그리어)를 찾아달라고 과거가 있는 사립탐정(로버트 미첨)에게 부탁한다.
*‘건 크레이지’(Gun Crazy·1949)-총에 집념하는 두 젊은 남녀가 미 전국을 돌며 대담한 강도 짓을 한다. 컬트 클래식. (사진) 가격 개당 20달러. 세트 50달러.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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