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뜨거운 여름이었다. 나는 그때 전기도 안 들어오는 경기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이 마치 장례식에서 대성통곡을 하듯 난장판으로 울어대곤 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그때 무척이나 고독을 탔는데 나의 이런 처형 같은 고독을 개구리들과 함께 대신 울어준 사람이 레이 찰스였다. 내가 갖고 있던 유일한 오락기구인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아이 캔트 스탑 러빙 유’를 듣는 순간 나는 고통에 가까운 감동을 경험했었다.
“당신 사랑하기를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고독했던 시간 속에 살기로 했지요/ 당신 원하기를 멈출 수가 없어요/ 말한들 무얼 하리요/그래서 나는 그저 어제의 꿈들 속에서 살아가려 한다오.” 브라더 레이가 영혼을 토해 내느라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부르는 노래가 내 마음을 상심의 바다로 만들어 놓았었다. 이 노래는 컨트리 가수 단 깁슨이 작곡한 것인데 레이에 의해 빅히트를 하면서 당시 5주간 빌보드 차트의 탑을 차지했었다. 레이는 컨트리송을 현대화한 가수로 나는 이 노래 때문에 그 뒤로 컨트리송 팬이 되었다.
며칠 전 레이 찰스(73)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과 함께 마음이 아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CD 2장을 차 속에서 계속해서 틀어 놓고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그를 추모했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겪는 고독과 고통과 상심 그리고 허무를 레이만큼 절실하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가 “음악은 내 혈관이요 호흡기관”이라고 말했듯이 레이의 노래들은 그의 모든 세포 및 영혼과 혼연일체가 되어 불러져 듣노라면 무한대의 감격을 겪게 된다. “나는 내 속에 음악을 안고 태어났다”는 레이의 말이 실감난다.
유행가란 대부분 그렇지만 그의 노래들은 거의 하나 같이 슬프고 아프다. 나는 그의 이런 노래들을 들을때면 새디스틱한 쾌감마저 느끼곤 한다. 세상이란 원래 우울한 것이니까 기쁜 척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레이의 노래들은 대부분 컨트리풍이다. 그가 ‘하나님의 음악과 악마의 언어’를 섞어 부른 소울음악이나 보통사람들의 노래인 컨트리송의 공통점은 비감이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 아프다오/달링 그래서 나는 그렇게 고독하지요”라고 아픔을 호소한 ‘아이 러브 유 소 머치 잇 허츠’는 “님이 떠날 테니 다시 울어야할 시간이군요”라고 징징 우는 ‘크라잉 타임’과 콤비로 들으면 곱으로 아프고 슬프다.
실연 당한 심정을 역으로 누설하고 투정한 노래들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 마음의 사슬을 풀어 날 자유롭게 해주오/ 님은 차가워졌고 더 이상 내게 관심도 없지요/ 나의 눈에서 이 눈물을 거두어 내 님이었던 당신의 사랑의 불꽃 한점 만이라고 보게 해주오”라고 변심한 여인에게 애걸복걸하는 ‘테이크 디즈 체인 프롬 마이 하트’는 실은 자기를 놓지 말고 계속 사랑해 달라는 얘기. 레이는 그러다가 “님이여 내 이름 들을 때마다 마음의 가책일랑 받지 말아요/ 누군가 당신에게 와서 내 자리를 차지했고/ 님은 내게 모든 고통을 주었지요/ 그러니 님이여 어딘가 가서 얼굴을 감추고 수치 속에 머리를 떨구세요”(‘행 유어 헤드 인 쉐임’)라고 주제넘게 떠난 사람을 훈계한다.
그리고 이런 투정은 아예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고 느끼신다면/ 속 앓지 말고 그렇게 하세요/ 나 결코 님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요”(‘아일 네버 스탠드 인 유어 웨이’)라는 오만 방자한 반항기로 탈바꿈을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 속 사내는 결국 태어날 때부터 여복이 없는 친구. “허무하고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내 인생/ 이제 나는 당신을 잃으니 나는 타고난 상실자이지요” (‘본 투 루즈’)라며 체념을 하고 만다.
나는 오래 전 유니버설 앰피 디어터에서 그의 공연을 구경한 적이 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굵은 테의 검은 안경을 낀 레이는 발을 피아노 위까지 올렸다 내렸다,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는가 하면 큰 기지개를 키듯 상반신을 뒤로 한껏 젖히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사진).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야 저 사람 비록 눈은 멀었지만 진짜로 행복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팝 음악의 장르의 벽을 무너뜨린 레이 찰스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스튜디오에서 유명 가수들과 듀엣으로 녹음할 정도로 정력적인 삶을 살다 갔다. 이제 하늘나라에 올라간 그는 지금 그 곳에서 천국 피아노를 치며 ‘오 해피 데이’를 신나게 부르고 있을 것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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