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중과 강창덕과 박종국은 나의 중고교 시절 친구들이다. 우리는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와서도 우정을 지키다 그 후로 효중과 나는 미국으로 왔고 창덕과 종국은 한국에 남게 됐다. 나이가 제일 많은 효중은 대윤이라 부르고 종국은 나보다 40일 먼저 태어나 대박, 넷 중 막내인 나는 늘 소박으로 불리며 그들로부터 정겨운 괄시를 당해 왔다. 효중과 동갑인 창덕만은 특별한 호칭이 없는데 그는 옛날부터 나를 나보다 더 잘 알아 나의 천적이라 했다.
우리는 뿔뿔이 헤어진 뒤에도 해마다 때가 되면 소식을 전했고 몇 년에 한번씩은 서울과 미국서 분산 상봉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늘 넷이 한번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큰 바람이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지난 주말 효중이 사는 시카고에서 이뤄졌다. 실로 30여년만의 4인방 상봉이었다.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나는 벗들이 기다리는 시카고로 날아갔다. 밤늦게 공항까지 마중 나온 그들은 나를 보자 “야, 소박 시카고에 잘 왔다”며 반긴다. 나는 공연히 얼굴이 부끄러워 눈을 내리 감았다.
그 길로 우리는 시카고교외 노스브룩에 있는 효중의 집으로 가 그의 아내 석환 엄마가 정성 들여 차려 놓은 진수성찬과 함께 스카치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흘러간 시절을 얘기했다. 우리들은 마치 계집애들처럼 “이게 보통일이냐. 이렇게 만나니 너무 좋다”면서 감격에 잠겼다.
과거에 우리는 주로 보문동의 종국의 집에서 자주 만났다. 모여서는 나이롱뽕을 하곤 했는데 패자는 점수대로 승자가 손가락을 퉁겨 이마를 때리는 벌을 받아야 했다. 늘 많이 맞는 것은 소박이었는데 이틀간의 시카고 체류 끝에 돌아가는 나를 놓고 친구들은 이마 맞기 화투를 못한 것이 끝내 섭섭하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이마가 근질근질해 왔다.
이튿날 우리는 시카고 브린마 길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나의 한국일보 선배기자로 시카고 지사 편집국장을 지낸 조광동씨와 저녁을 함께 했다. 우리는 과거와 요즘 한국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지금 지역 TV 방송국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는 조 선배는 보기 드문 정의한이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아래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일요일에 우리는 일명 서울 드라이브인 로렌스의 코리아타운을 거쳐 시카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운전을 하는 효중은 시카고 하면 알 카폰 때문에 선뜻 범죄도시로 생각하지만 시카고는 공기 좋고 물 좋은 호반도시라며 자신의 제2의 고향을 극구 찬양했다. 그러면서 바람 많아 붙은’윈디 시티’라는 별명에 대해선 슬쩍 넘어갔다.
시카고의 금싸라기 땅 미시간 애비뉴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일단 미시간 호숫가에서 시어즈타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어 우리는 시카고 다운타운 한복판으로 진입, 수많은 관광객 속에 섞여 미시간 애비뉴를 활보하며 시카고의 고전과 현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건물들의 장관을 감상했다.
6.25 때 G.I.들이 던져주던 리글리 검의 본부인 리글리 빌딩 밑에서 시카고 강과 미시간 호수를 왕래하는 웬델라 관광보트를 탔다. 안내원이 시카고 트리뷴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시카고 선타임스 건물은 트럼프가 사 내년에 허물고 90층짜리 호텔을 짓는다고 알려줬다. 시카고 컵스의 홈런타자 새미 소사가 사는 커브가 진 흑색의 레이크 포인트 타워와 카폰이 금주령 시대 밀주를 팔았던 이스트 왜커 드라이브 35번지 건물을 구경하는 우리들 주위로 갈매기 떼들이 날며 시끄럽게 울어댄다.
뜨거운 한낮 관광 후 우리는 미시간 애비뉴의 사우스워터 키친에 들러 맥주로 갈증을 달랬다. 시카고에서는 아직도 바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식당이나 공항 화장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한결 같이 재즈.
성격이 모두 다른 우리는 이제야 그 서로 다른 것을 얼릴 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디어 헌터’의 주인공들 처럼 어른 아이가 되어 우정의 맑은 물로 전신을 목욕했다. 예전에 그럴 줄 미처 몰랐던 것은 효중은 불타사 선학원 학회장이요 창덕과 종국은 기독교 신자 그리고 나는 무소속이라는 것.
내가 떠나는 날은 어머니날 이어서 효중의 아들 석환이가 대접한 스테이크를 포식했다. “소박아 이틀만 더 있다 가라”는 친구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었을까. 전송차 공항까지 나온 친구들이 “우리 이제 격년으로 모이는 거야”라고 다짐하는 약속이 지켜지길 빌며 LA행 비행기를 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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