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생 때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으면서 주인공 뫼르소에게 다소 실망했었다. 글은 뫼르소 어머니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된다. 뫼르소가 어머니를 묻으러 가는 길에 장지 인부가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연세가 많으셨습니까” 뫼르소는 “꽤 많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정확한 나이를 몰라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니 아들이 어머니 나이도 모르다니 하고 의아해했었다.
평생을 과부로 지내며 외아들인 나와 내 여동생을 키우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언 8년이 지나갔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매끄럽다고 한다지만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유별났다. 그녀는 마치 이 세상을 날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나를 사랑하셨다. 고등학생인 나의 엉덩이를 다독여주곤 했는데 나는 때론 어머니의 이런 사랑이 너무 겨워 반항을 하곤 했었다.
6.25 때 아버지가 납북 당하면서 집안이 망한 뒤로 어머니는 두 남매를 키우느라 손발이 다 달았다. 한 때 조선호텔과 명동 나들이나 하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런 억척은 그녀가 이북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도 모른다. 부산 피난 시절부터 나의 대학 시절까지 어머니의 고단함은 쉴 새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고생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였었다. 아니 때로는 어머니가 우리를 먹여 살리느라 할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일이 부끄러워 악을 쓰며 그녀에게 대어들기도 했다. 지금도 그 당시 일을 생각하면 나에 대한 수치감과 함께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에 젖곤 한다. 진방남이 노래한 ‘불효자는 웁니다’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시인 천상병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내가 40대 때 돌아가신 어머니/ 자꾸만 자꾸만 생각납니다/ 나이가 60이 됐으니까요!/ 살아 계실 때 효도 한번 못했으니/ 얼마나 제가 원통하겠어요 어머니!’(‘어머니’)라며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돈 쓰고 치장하는 일밖에 모르던 작은 그녀의 어디에서 그같은 강인한 생활력이 나왔던 것일까. 짐승과도 같은 에너지요 사랑이었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폭포수 같은 호의에 대한 나의 무성의를 생각하면 내 존재 자체가 먼지 같아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잘 살 때 밥하는 아주머니가 따로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먹고사는 일이 너무 바빠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별로 좋지 않았다. 간이 짰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싱겁게 먹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달걀찌개 하나만은 맛이 좋았다. 달걀찌개는 지금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어머니는 극성스러울 만큼 나를 사랑해 내가 초등학생 때 그 바쁜 중에도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교실에서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수업을 참관하시곤 했다. ‘맹모 삼천지교’라고 어머니는 나를 좋은 초등학교에 집어넣으려고 이사를 여러 번 다니셨다.
어머니는 이 곳에서 돌아가시기 1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당시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던 어머니는 쓰러졌다 곧 일어나서도 병원 대신 미장원엘 갔을 정도로 외모에 유달리 신경을 쓰셨던 분이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매섭도록 빼어난 미인이었다. 나는 다소 회복되신 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미는 것을 귀찮아할 때도 있었지만 내 여동생은 정성을 다해 그것을 밀고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다녔다. 그리고 동생은 “사랑은 오빠가 다 받고 왜 내가 힘든 일을 해야 하지”라며 나를 핀잔했었다.
내 방 책장 선반에는 나의 대학 졸업식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나는 요즘도 종종 출근하기 전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에 손 키스를 보내며 “어머니”하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이제 하늘에 사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내 걱정하시느라 목을 길게 뽑고 아래를 내려다보시고 계실 게 틀림없다. 어머니 헤세의 시를 읽어 드립니다.
‘바깥 따스한 잔디밭에서/ 구름을 보고 싶어라/ 그리고 고달픈 눈을 감고/ 꿈나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가고 싶다/ 오, 어머니는 이미 소리를 듣고/ 살그머니 나를 마중해 주며/ 멀리서 찾아온 나의 이마와 손을 조용히 그 무릎에 놓아주신다/ 어머니는 지금 부끄러운 생각 괴로운 슬픔으로/ 내가 고백하는 여러 일들을 물으실 것인가?/ 아니, 어머니는 웃으신다!/ 오랜만에 나와 함께 있음을 기뻐하신다.” (‘어머니의 꿈’)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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