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대전서 교편을 잡았을 때만해도 대전발 영시 오십분 목포행 완행열차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신설 고속철도인 KTX를 타고 목포를 다녀왔다. 5년만의 고국방문이었다.
신문사와 대학과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보고 또 지난 1일 개통된 한국의 TGV인 KTX를 타고 가 항구에서 술을 한 잔 마시기 위한 여행이었다. 용산역에서 상오 10시30분에 4만1,000원을 내고 표를 끊고 탄 KTX는 대전까지는 시속 300km 그리고 대전서 목포까지는 시속 170~ 200km로 달려 하오 1시50분에 목포에 도착했다. 대전 이후는 아직 고속철도가 놓아지지 않아서인데 군사정부 독재시절의 후유증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TKX가 개통되면서 한국 언론들은 연일 이 철도가 고장이 잦고 소음이 많으며 또 역좌석에 앉으면 어지러운 적자철이라고 보도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타본 결과는 아주 쾌적하고 빠른 여행이었다. 여자 안내원은 상냥했고 승차감은 부드러웠으며 역좌석에 앉아 봐도 별로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들 호들갑을 떠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목포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손인호가 부른 ‘비 내리는 호남선’을 타고 와 ‘목포는 항구다’의 북항을 찾아갔다. 항구의 횟집에서 싱싱한 회에 소주(요즘 목포 사람들은 진로도 마신다)를 곁들인 뒤 택시를 타고 유달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가는 길은 떨어진 동백꽃 잎으로 어지러웠는데 운전사는 “어째 날 맞춰 왔소”라며 빗속의 객을 맞았다.
유달산 중턱에 있는 이난영의 노래비는 폭우를 맞으며 ‘목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을 흥얼대며 빗속 연무를 통해 내려다보는 항구도시가 질척거리는 낭만을 쏟아놓고 있었다.
돌아온 서울은 활기찼다.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았다(신문사 동료는 부가 축적되지 못하고 소비만 높아져 한국 경제가 속 빈 강정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30년 전 내가 근무하던 한국일보 근처의 청진동을 돌아보면서 낮에는 설렁탕을 먹고 밤에는 신문사 동료들과 소주에 매운 낙지 후 생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당시 경찰기자를 할 때 퇴근 후 선후배 ‘사즈마우리’(경찰기자를 말하는 일본어)들과 함께 개떼들처럼 몰려다니며 먹고 마시던 족발과 빈대떡집 ‘장원’과 ‘청일’ 그리고 내 이름과 똑같은 해장국집 ‘흥진옥’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루하다.
내가 이번에 새로 감각한 서울 풍경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애완동물 병원과 그것들용 물건을 파는 상점들. 사람들이 잘 사니 펫들을 많이 키우나본데 요즘 애완견들은 인간이 먹는 밥은 줘도 안 먹고 자기들용 펫 푸드만 먹는다고 한다. 서울 교외에는 종자 좋은 개들끼리만 교미시키는 곳도 있다는데 이 곳에서는 하루에도 수백쌍씩이 개 사랑을 한다고. 개판이네.
홍콩처럼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짜장면 등 각종 주문품을 배달하는 꼬마 모터사이클들이 마치 다람쥐들처럼 과속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구호가 많았다. ‘미아등 불법 양육자 자수기간’ 등 온갖 구호를 적은 현수막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강남 테헤란로의 한 건물 주차장 입구 벽에 적힌 경고문 ‘소변 금지’를 보면서 그것만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더니 이튿날 황사가 서울을 덮쳤다. 광화문을 걷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다녔다. 나는 눈이 아파서 작은 고통을 했다. 황사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봄은 간지러웠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떡볶이는 안 팔고 셀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새빨간 루즈를 바른 입술이 옆에 핀 철쭉꽃의 색깔과 잘 어울렸다.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우리나라 이민국 직원들은 무척이나 무뚝뚝했지만 흐뭇한 고국 길이었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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