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다가가는 길
이제 이틀 후면 나는 서울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LA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게 된다.
USC에서 유학하던 후배가 한국에서 ‘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는데, 그 창립 연주에 초청되어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를 협연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큰 무대에 서는 데다, 나로서는 이번이 한국에서 하는 첫 연주라 그 부담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연습은 할수록 더 연습할 게 많아지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를 않는다.
연습을 하다가 가장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는 계속해서 같은 부분을 틀릴 때이다. 분명히 내 머릿속으로는 맞는 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는 달리 나의 손가락은 아까 틀렸던 부분을 또 똑같이 틀린다.
그 부분만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여도 다음 날 다시 쳐보면 그 부분에 가서 똑같은 실수를 또 하는데는 아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나의 이성과는 별개로 나의 몸은 세번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렇게 기억해 버린다고 한다. 몸이 일단 한 번 그렇게 기억해버리고 말면 그 다음에는 고치기가 참 힘들다. 머리보다 오히려 몸의 기억력이 훨씬 더 견고해서, 한 번 익힌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는 1시간이 넘는 프로그램의 곡들을 모두 외워서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연습하면서 반복적으로 틀린 부분은 그래서 연주를 할 때 다시 틀릴 확률이 매우 크다. 고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맞는 음으로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다. 맞는 음으로 고쳐서 여러 번 반복하고, 그 부분의 앞부분과 뒷부분까지 함께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그 부분의 진입하는 과정과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정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만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그 부분을 연습하다 보면, 며칠 걸려서 문제가 해결된다.
연습을 하는 동안,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것과 같은 나쁜 버릇들도, 이처럼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고쳐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특히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이 나이가 되도록 틈만 나면 손톱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대부분 무의식중에 손톱을 물어뜯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손이 입으로 가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자제하는 것을, 손톱을 물어 뜯어온 시간만큼이나 긴 시간 동안 계속해야 이 버릇이 고쳐질 테니,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그런가하면 연습을 해도해도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고쳐질 때도 있다. 예를 들자면 오른손이 자꾸 틀릴 때, 오히려 오른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왼손에 신경을 쓰다보면 오른손이 저절로 맞는 음을 칠 때가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복잡해 보이는 오른손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왼손에 소홀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기에 복잡해 보이는 오른손 보다 왼손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살다보면 영 풀리지 않던 문제가 엉뚱한 일을 계기로 풀릴 때가 있는데, 이는 그동안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많이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한 음 한 음의 터치와 소리, 그리고 프레이징에 신경을 쓰다가, 곡 전체의 흐름이 엉망이 될 때이다. 이러한 경우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중에 스스로 깨닫기는 힘들고, 연습하는 과정을 녹음해 두었다가 나중에 듣고서야 깨달을 수 있다.
분명히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내가 피아노를 치는데도, 객관적인 귀를 갖고 내가 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녹음을 해 두었다가 나중에 들어보면 마치 남의 연주를 듣는 듯 생소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객관적이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연습만이 완벽을 이룬다는 말이 있듯이, 완벽으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연습을 하다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겸손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구도자의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 새 완벽이라는 이상에 조금 더 다가와 있곤 한다.
세상에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연습이야말로 내가 피아노를 치면서 가장 많은 배움을 이루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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