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타리 마이 디어 왓슨”을 후렴처럼 외우며 고도의 지능적인 범죄를 연역법으로 풀어나가는 전설적 사립탐정 셜록 홈즈가 영국에 있다면 프랑스에는 터무니없는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희대의 사건을 풀어내는 광대 같은 형사 자크 클루조가 있다. 60년대 초 영화 ‘핑크 팬서’(The Pink Panther)를 통해 세상에 통성명을 한 클루조는 한 마디로 말해 기막히게 운 좋은 천재적(?)인 천치형사로 소속은 파리 경시청.
‘핑크 팬서’는 순진하던 60년대 초 미 팝문화의 하나의 우상이었다. 사람들은 ‘핑크 팬서’를 클루조나 그가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멋쟁이 보석도둑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실은 안에 비상하는 분홍색 표범 모양의 무늬가 있는 값진 보석의 이름이다.
‘핑크 팬서’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64년 4월11일에 개봉된 ‘핑크 팬서’의 오프닝 크레딧. 만화로 그린 얼띈 모습을 한 분홍색의 표범이 헨리 맨시니(그는 이 음악으로 3개의 그래미상을 탔다)의 음표들이 뒤뚱거리는 주제곡에 맞춰 도둑 발걸음을 내디디면서였다. 배꼽 빠지게 우스운 슬랩스틱 코미디 소극인 ‘핑크 팬서’ 시리즈를 만든 사람은 올해 오스카 명예상을 받은 블레이크 에드워즈(‘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연출한 그는 배우이자 가수인 줄리 앤드루스의 남편). 에드워즈가 제작하고 각본을 쓰고 감독한 시리즈는 모두 8편이 나왔다.
분홍색 표범과 함께 ‘핑크 팬서’하면 얼른 생각이 나는 사람이 클루조다. 작고한 영국의 베테런 코미디언 피터 셀러즈(‘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의해 팬들의 뇌리에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영화 속 인물 중 하나가 된 것이 클루조다. 세상에 이렇게 서커스의 어릿광대 같고 또 갓난아기의 순진성마저 지닌 멍청이도 없을 것이다.
이런 바보가 형사가 됐으니 도둑들이 가가대소할 일인데 이 바보가 우여곡절 끝에 자기보다 똑똑한 도둑을 잡아 마지막에 훈장을 타곤한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는 형사의 대명사가 된 클루조는 파괴의 명수. 두 발짝만 내디디면 제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꽃병 등 온갖 가재도구를 파손시키고 문손잡이를 뜯어내고서야 문을 열며 방의 벽과 천장과 침대를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이층 창문에서 밖에 있는 연못으로 추락하는가 하면 툭하면 불을 낸다.
클루조는 또 자칭 변장의 명수라며 시리즈를 통해 꼽추와 해적과 절름발이 등 온갖 모양으로 탈바꿈을 하곤 했다. 그 중 가장 걸작은 시리즈 제2편 ‘어둠 속의 총성’(A Shot in the Dark·64)에서 클루조가 수사차 누드촌에 알몸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기타로 가린 자연모습의 변장(?)이라 하겠다.(사진). 그런데 원래 클루조역은 얼마전 작고한 피터 유스티노프에게 제의됐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셀러즈에게 돌아갔다.
시리즈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인물은 클루조의 상관 드라이퓌스(허버트 롬). 클루조의 실수로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는 드라이퓌스는 파리 경시청의 이름에 먹칠을 해대는 무능한 클루조 때문에 수시로 눈을 깜빡거리는 신경쇠약증자가 되었다. 그는 범죄자들보다 클루조를 더 미워한다. 그래서 시리즈 제4편 ‘핑크 팬서 다시 한탕하다’(The Pink Panther Strikes Again·76)에서는 완전히 돌아버린 드라이퓌스가 세계 정부를 향해 클루조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고안한 가공할 무기로 세계를 파멸시키겠다고 공갈을 치기까지 한다. 그래서 세계 정부는 무려 26명의 암살자를 파견하나 기막히게 운이 좋은 클루조는 살아 남는다.
영화를 볼 때마다 웃으면서도 다소 꺼림칙한 것이 클루조의 중국인 하인 케이토(버트쿠웍). 케이토는 클루조의 무술연습 대상으로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 죽도록 얻어터지는데 과거 할리웃이 묘사한 동양인 하인의 전형적 모습이어서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셀러즈는 ‘핑크 팬서의 복수’(Revenge of the Pink Panther·78)를 마지막으로 1980년 54세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당시 타임지 커버 스토리). 그 뒤로 과거 5편의 시리즈에서 잘려나간 필름을 모아 만든 제6편 ‘핑크 팬서의 자취’(Trail of the Pink Panther·82)와 각기 테드 와스와 로베르토 베니니가 클루조와 그의 아들로 나온 제7편과 제8편이 만들어졌으나 모두 쓸데없는 속편들. 한편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주연하는 ‘핑크 팬서의 탄생’(The Birth of the Pink Panther)이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MGM은 ‘핑크 팬서’개봉 40주년을 맞아 시리즈 5편과 보너스판 등 6장의 디스크를 가죽 커버에 담은 특별판(70달러)을 출시했다. 이와 함께 헨리 맨시니 /핑크 팬서 기념우표도 나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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