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대학시절 실내장식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주로 심부름을 보내는 곳은 건축설계 사무실이었다. ‘아키반’ ‘광장’이니 하는 유명 건축사무실에 심부름을 가면, 그 사무실이 주는 부산하면서도 아티스틱한 분위기가 좋았다. 나를 예뻐하던 그 교수가 자신의 대학 후배인 건축과 남학생을 소개할 때,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 땐 아무 것도 모를 때였다. 이 곳에 유학 와서 남편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도, 건축과를 나오면 비스듬 제도판에서 샤프연필로 그림 그리는 줄로만 알았다. 꿈 깨라 꿈 깨 자신은 설계전공이 아니고 시공이 전공이니 사무실에 앉아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내 기대를 저버리고 50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땡 볕에서 ‘노가다’ 일을 하는 남편. 본인 말대로 책상물림이 체질에도 안 맞는다니 그리고 코 바람이 들어가야 살 것 같다니 소원 성취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 와 전공대로 사는 사람이 드문데 그나마 전공 살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몸은 힘들어도, 남이 뭐라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이의 행복은 아주 값진 것일 테니 말이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초기, 벌이가 시원치 않을 때 나는 직장을 가져서 생계를 도왔다. 11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집에서 쉬려니 이젠 자기 회사에 나와 일을 도우란다. 가정학을 전공한 나는 가정에만 있고 싶다고 했다. 나도 전공 살려 가사만 돌보겠다고 핑계를 댔다. 프로페셔널 주부의 본때를 보여 주겠노라고 했다. 프로페셔널 주부, 이건 늘 써먹는 말인데 별 효력이 없다. 이론은 프로인데 현실로 넘어가면 아니기에 말이다. 남편 말이 Home Economics를 전공했으니, 회사의 재정을 돌보라는 것이다. 실은 Economics 이렇게 어려운 말이 가정학에 들어 있는 줄도 몰랐다.
요즘엔 남편의 사무실에서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컴퓨터와 놀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여러 현장을 한바퀴 돌고 사무실에 들어올 즈음이면 인터넷도 글 쓰기도 멈추어야 한다. 니 놀고 묵을라 카나? 요즘 들어 부쩍 잔소리를 해대기 때문이다. 남편이 사무실에 있으면 꼼짝없는 인질 신세이다. 사무실에 밀린 견적을 보는 직원들로 북새통이고, 남편이 붙박이로 붙어있으면 컴을 열고 있기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주말인 금요일은 주급을 계산해야 하므로 무척 바쁘다. 금요일만큼은 극히 예민해지고 세상적이 된다. 돈이란 사람을 이렇게 원초적으로, 치사하게 만든다. 시간당 계산을 해야 하는 사람들과는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이들과 덜 주려는 사람 사이에 늘 갈등이 있게 마련. 본의 아니게 나는 늘 야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게서 주급수표를 받은 사람은 계산이 적다싶으면 남편에게 달려가서 일러바친다. 현장 매니저가 가져오는 리포트대로 시간을 계산하니 나의 계산은 별로 틀리지 않건만. 남편은 늘 그들 말을 100% 수용한다. 적은 돈으로 맘 상하게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때론 그런 태도가 못 마땅하여 남편과 다툼이 있었지만, 이젠 남편의 말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다.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건 그들 때문이라는 걸 요즘에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이 월급을 주는 나 때문에 사는 줄 알고 건방을 떨고 살았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모자라고 모자란 사람이다.
작년 연말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우리 직원 미스터 안토니오 알바라도. 멕시코 사람으로 현장 노동자였다. 그 사람은 늘 불만이 많았다. 나는 그가 싫었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성의 없는 위로금만 보냈지 가보지 않았다. 남편은 병원에도 여러 차례 가보고, 퇴원하여 누이 집에서 요양중이라는 말을 듣고, 그 누이의 집에도 다녀왔다. 안 그래도 바쁜 남편이 왜 그리 신경을 쓰는지 짜증이 났다. 긴 연말 휴가로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사이에 세상을 떴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두 달도 지난 어제 금요일, 뜬금 없이 회사로 편지가 하나 배달되었다. 편지 속에는 안토니오 알바라도의 콧수염 난 사진이 들어있었고, 사진 뒤에 서툰 글씨가 써 있었다. 그 글씨는 안토니오가 생전에 쓴 것인지 아니면 사후에 누이가 쓴 것인지 모른다. 스패니시를 아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patron(사장)이라는 말만 알 수 있었기에.
’좋은 사장을 만나 그동안 감사했다. 나는 네가 믿는 예수를 믿기로 했다.’ 이런 말이란다. 그 말하면서 무뚝뚝 남편 눈에서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진다. 잘난척쟁이 내게 보낸 예수님의 편지 사순절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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