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지난 토요일 친구 C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온 로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RCO)의 연주를 듣기 위해 오렌지카운티 공연센터를 찾아갔다. 우리는 차 안에서 대학생 때 LP로 듣던 교향악단과 지휘자 허버트 블롬스테트를 직접 만나는 것에 대해 약간 흥분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가 나이가 먹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나이를 먹어도 음악 사랑은 변함 없지만).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미국식으로는 콘서트게보우라고 발음한다. 나는 옛날부터 궁금했던 이 발음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워싱턴에 있는 로열 네덜란드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한 여직원이 네덜란드 발음으로는 헤보우이고 그 뜻은 건물이라고 친절히 가르쳐 줬다.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RCO는 연주회장과 오케스트라가 같은 해에 생긴 묘한 경력을 갖고 있다. 먼저 1888년 4월 콘체르트헤보우가 개관하고 이보다 6개월 뒤인 11월 교향악단이 여기서 첫 연주회를 가졌다. 원래 이름은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인데 창립 1세기를 맞은 1988년 로열이라는 왕관을 썼다.
RCO는 벨벳 감촉의 현악기와 황금빛의 금관악기 그리고 맵시 고운 목관악기로 정평이 나있는데 작곡가 리햐르트 슈트라우스가 “참으로 장려하고 청춘의 활기와 열광으로 가득 찬 악단”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이 교향악단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교향악단 중 하나로 존경 받게된 데는 1세기가 넘는 동안 극히 제한된 수의 상임 지휘자에 의해 키워져 온 것이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이 악단을 반세기나 지휘했던 빌렘 멩겔베르크(1895~1945). 멩겔베르크 이전의 최초의 상임지휘자 빌렘 케스와 멩겔베르크 이후의 에두아르드 반 바이넘 및 버나드 하이팅크 등은 모두 네덜란드 사람. 1988년 제5대 지휘자로 임명돼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기는 이탈리안 리카르도 샤이이가 최초의 비네덜란드인이었다. 샤이이의 바톤을 이어 받는 지휘자는 라트비아인인 마리스 얀손스.
그동안 1,000회에 가까운 레코딩을 한 RCO는 특히 후기낭만파인 말러와 브루크너의 음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말러의 전통은 이 악단을 직접 지휘한 말러 자신에 의해 씨가 뿌려졌고 브루크너를 교향악단의 중요한 레퍼터리로 삼은 사람은 반 바이넘이었다. 이같은 말러와 브루크너의 전통을 새롭게 한 지휘자가 샤이이. 샤이이는 재임 중 낭만파 음악과 함께 현대 음악과 오페라를 레퍼터리에 포함, 교향악단에 새 자극을 주입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지난 토요일의 연주는 오렌지카운티 필하모닉협회(OCPS)의 창립 반세기를 맞아 마련된 해외 저명 교향악단 초청연주 시리즈 중 하나였다. 레퍼터리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주피터’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
지휘자 블롬스테트(76·사진)는 미국 태생의 스웨덴인으로 지난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자주 LA필을 객원지휘 했었다. 블롬스테트는 토스카니니 같은 독재적 지휘자가 아니라 조용히 단원들의 음악적 기능을 키우면서 아울러 새 레퍼터리를 개발해온 전후 지휘자의 대표적 인물이다.
큰 키에 안경을 쓰고 은발을 한 블롬스테트는 ‘주피터’를 맨 손으로 지휘대 없이 지휘했다. ‘주피터’는 이름 그대로 모차르트의 최대 역작중 하나.
그러나 이 날의 연주는 웅장하다기보다 단아했다. 블롬스테트는 두 손만을 사용해 가며 마치 마술사가 음의 꽃을 피워내듯 했는데 손으로 정성껏 자세히 음을 그리고 써 내려갔다. 음을 하나 하나 세공하듯 했는데 따스하고 풍요로우면서도 매우 정제되고 고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같은 착실하고 틀림없는 지휘는 마치 선생님의 자상한 가르침을 받는 느낌을 갖게 했다.
금관악기가 무성하게 슬픔의 파도를 일으키듯이 제1악장이 시작되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은 ‘주피터’와 달리 풀 오케스트라에 지휘봉과 지휘대를 이용했다. 이 음악 역시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비감이 가슴을 파고드는 제2악장의 ‘작은’ 연주가 듣기 좋았다. RCO의 이날 연주는 작은 것이 무척 다정다감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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