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선정한 2003년도 각 부문 베스트에 대한 만찬이 26일 하오 6시부터 센추리시티에 있는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서 열렸다.
보통 때 배우들 얘기를 할 때면 약간의 비하감정을 섞어 하던 우리들도 스타를 직접 만나 본다는 스릴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스타 파워라는 것이다.
하오 7시에 시작되는 만찬 전까지는 로비에서 칵테일과 포도주를 마시며 스타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사진 찍는 시간.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도쿄에서의 방황’을 감독한 자기 딸 소피아가 시상식에 참석한다고 자신의 포도원에서 만든 코폴라 포도주를 보내왔다.
내가 처음 만난 배우는 ‘모래와 안개의 집’으로 최우수 조연여우로 뽑힌 이란계 쇼레 아그다슐루. 긴 검은머리에 가슴이 깊이 패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얼굴도 진한 인상이었다. 나는 악수를 나눈 뒤 당신의 연기가 격찬을 받은 뒤 좋은 각본들이 많이 왔느냐고 물었다. 쇼레는 지금까지 3편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좋다면서 할리웃서 좋은 각본 찾기가 힘들다고 답한다. 그녀는 상을 받는 게 너무 기쁘다는 표정이었는데 수상 소감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깊은 절을 했다.
’도쿄에서의 방황’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신세대상을 받은 스칼렛 조핸슨은 금발을 뒤로 단정히 묶고 얇은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나는 ‘도쿄에서의 방황’을 본 뒤로 내내 궁금했던 사연을 물어봤다. 스칼렛, 마지막에 빌 머리가 네 귀에다 대고 속삭인 말이 무엇이니. 그랬더니 스칼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건 빌과 나만의 얘기로 알고 싶겠지만 모른 채 미스터리로 놔두는 게 나을 것이라며 안 가르쳐 준다.
나는 같은 질문을 소피아(사진)에게도 물었다. 수수한 검은 옷을 입은 작은 체구의 소피아도 그건 빌과 스칼렛간의 얘기여서 말할 수 없다고 같은 대답. 아버지는 왜 안 왔니하고 물으니 어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내가 상을 두개나 받은 데 너무 흥분해 지쳐 못 왔다고 말한다. 매우 겸손한 태도였다.
나는 스칼렛과 소피아에게 둘의 영화와 감정적으로 유사한 ‘일본 이야기’를 꼭 보라고 권했더니 그러겠다고들 약속. 스칼렛은 수상소감에서 뉴욕비평가들은 날 제쳐놓았다고 뼈가 있는 농담을 한 뒤 하복부가 뜨거워질 만큼 황홀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21그램’으로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힌 네이오미 와츠는 흰옷에 역시 금발을 뒤로 묶은 다정한 모습이었는데 소피아만큼이나 갈비씨였다. 나는 네이오미에게 마지막에 당신이 임신한 아기가 당신과 사랑을 나눈 션 펜의 것이냐 아니면 심장병 환자인 션에게 죽은 뒤 심장을 준 당신 남편의 것이냐고 물었다. 네이오미는 션의 아기라더니 그러나 실제로 션의 아기는 아니다고 호주 액센트가 있는 말로 강조한다. 수줍음이 많은 여자였다.
나는 원래 네이오미의 아기는 션과 네이오미의 죽은 남편의 공동의 아기라고 생각하던 터라 ‘21그램’의 멕시칸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를 찾아가 다시 물었다. 이나리투는 둘 다의 아기지라고 내 의견에 동의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당신이 즐겨 만드는 어두운 영화들을 좋아하니 계속 그런 것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네이오미는 수상소감에서 나는 각본도 안 읽고 ‘21그램’에 출연했다면서 영화의 할 일은 인간성 표현이라며 이나리투 감독을 극구 칭찬했다.
식장에 제일 늦게 도착한 사람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으로 감독상을 받은 피터 잭슨. 자기 영화에 나오는 호빗 같은 모습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단구의 피터와 사진을 찍으며 난 한국사람이고 당신은 뉴질랜드 사람이구나고 말했더니 그래 여기가 UN이다고 농담한다. 나는 그에게 당신 이번에 오스카상 받을 거야라고 내기를 걸자고 했더니 두고 보자면서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최우수 조연남우로 뽑힌 빌 나이는 내게는 진짜 큰일인 이 상을 받기 위해 영국서 날아왔다면서 여러분이 나를 진정으로 알아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최우수 주연남우로 뽑힌 빌 머리는 이탈리아에서의 촬영 때문에 참석 못했다. 칵테일과 스타 파워에 취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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