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내에서는 낯선 장소에서 만난 방황하는 마음을 가진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묘사한 우수가 촉촉이 배여 든 아름다운 2편의 영화가 상영 중에 있다.
네온이 명멸하는 도쿄라는 도시를 무대로 한 ‘도쿄에서의 방황’(Lost in Translation·사진)과 호주 서부의 무한하게 황량한 필바라 사막이 장소인 ‘일본 이야기’(Japanese Story). 이 두 영화는 각기 여자가 감독한 데다가 낯설고 물선 장소에서 만난 두 남녀의 감정적 연결 그리고 이런 관계를 통한 자신과 상대방의 내면 성찰을 깊고 민감하며 또 통찰력 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닮았다.
두 영화는 모두 일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쿄에서의 방황’은 일본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스타일을 재미있게 묘사했고 ‘일본 이야기’도 일본인 남자주인공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감정 표현과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영화는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강한 연계성을 맺고 있다.
사람들은 미지의 장소에 도착하면 고독해지고 방황하게 마련이다. 이 방황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모르던 것과 만난다는 스릴이 따르는데 전연 생소한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고독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쾌감이라고 하겠다. 도시와 사막은 모두 몰인정하다는 데서 마찬가지인데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같은 몰인정한 장소에서 만났기 때문에 더욱 접근을 하게 됐을 것이다.
프랜시스 코폴라(‘대부’)의 딸 소피아(32)가 감독한 ‘도쿄에서의 방황’의 두 주인공은 한물 간 중년의 미국 영화배우 밥(빌 머리)과 철학을 전공한 결혼 2년째인 아직 앳된 모습의 샬롯(스칼렛 조핸슨). 밥은 산토리 위스키 광고 필름을 찍으러 도쿄에 왔고 샬롯은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왔다.
둘은 모두 파크 하이야트 호텔에 묵고 있는데 이국에서의 불면 때문에 호텔 꼭대기 바에 올라갔다가 만나게 된다. 혼자 여행을 하며 불면과 고독을 앓아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깊은 밤 호텔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의 감정적 향기를 들여 마셔 보았을 것이다. 한편 밥과 샬롯은 모두 내면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동병상련자들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까워진다. 밥과 샬롯의 관계는 우정과 애정의 경계를 알 듯 모를 듯 넘나들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마지막에 둘이 헤어질 때 밥이 샬롯을 끌어안고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 말의 내용이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수 브룩스가 감독한 ‘일본 이야기’는 전형적인 딱딱한 동양인인 일본 사업가 히로미추와 야심 차나 성취감을 못 느끼고 사는 호주의 여 지질학자 샌디(토니 콜렛)가 함께 호주의 광활한 사막을 여행하면서 맺는 관계의 드라마다. 모든 것이 상반되는 둘은 의사소통의 불편 속에서 처음에는 긴장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막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서로 자신의 감추었던 내면을 드러내고 관찰하게 되면서 아울러 상대방의 내면을 깨닫게 된다. 두 남녀는 원시적이요 본능적이며 가차없이 넓고 아름다운 자연(우주)의 절대적 힘에 의해 사랑을 맺고 자신들의 구각을 탈피하면서 새 것을 깨닫게 된다.
두 영화에서는 모두 도시와 사막이라는 장소가 제3의 주인공처럼 절대적 역할을 한다. 온갖 원색의 네온이 도쿄의 밤하늘을 별처럼 촘촘히 차지하는 비좁은 공간감과 적황색 사막의 아무 것도 없는 태초의 공간감이 두 남녀를 모두 고독과 방황에서 건져 주고 있다. 이들 공간은 갈등하는 내면을 지닌 사람들의 요람 구실을 하면서 자꾸만 두 사람들을 접근시키는데 빈 것이 채워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매력적인 ‘일본 이야기’는 영화음악이 무척 구슬프다. 반복되는 현악기의 리듬 뒤로 흐르는 한숨처럼 처연한 음악이 작품의 초현실적 기운을 잘 살려주고 있다. 특히 통곡을 하는 것 같은 여인의 일본어 노래는 거의 귀기마저 실려 있다.
두 영화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공통점은 두 남녀가 함께 누운 모습을 공중에서 아래로 찍은 장면. 호텔 방에서 반듯이 드러누운 밥 옆에서 새우잠을 자는 샬롯의 모습과 사막에서 추위를 견디려고 히로미추와 샌디가 등을 맞대고 새우잠을 자는 모습이 무욕의 경지여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롭다.
두 영화는 모두 이별로 끝나지만 희망을 감각케 하는 것도 닮았다. 이들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와 수 브룩스라는 여자 감독들만이 느끼고 그려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인간 내면의 지도이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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