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오는 감정이라는 동전의 양면이요 시아미즈 트윈처럼 서로 매달린 것이어서 인간의 마음을 제멋대로 혼용하는 원초적 느낌들이다. 그래서 사랑이 미움이 되고 또 증오가 사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과 전장에서 공격자와 피공격자 간에 사랑이 꽃 피는 것도 바로 이런 애증간의 반발하는 동질성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해도 되겠다. 특히 죽음과 파괴와 공포를 부리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모든 어둡고 아픈 것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사랑은 무수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손에 손을 잡고 다니기가 일쑤다.
지난 8월 이라크 여인 E(25)와의 결혼식을 위해 순찰도중 잠시 자리를 떴다는 이유로 최근 불명예 제대 당한 미육군 상사 숀 블랙웰(27)의 사랑도 전장에서 맺어진 것이어서 더욱 로맨틱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둘은 지난 4월 바그다드 함락 직후 블랙웰이 경비를 서던 보건부에서 만났는데 서로 상대방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러브 앳 퍼스트 글랜스다.
둘은 몇 달 간의 사랑 끝에 블랙웰이 회교로 개종한 직후 그의 순찰일을 택해 바그다드의 한 식당 뒷마당에서 E의 가족과 판사만이 참석한 채 결혼식을 올렸는데 식은 20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블랙웰은 그 후 영외출입이 금지됐다가 직무태만과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러매틱한 전장에서의 사랑이다.
적과의 사랑은 극적이어서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쓰여진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탈리안 장교로 나와 점령국인 그리스섬의 맹하게 예쁜 페넬로피 크루스와 사랑하는 졸작 ‘콜렐리 대위의 만돌린’과 아일랜드 유부녀(새라 마일스)와 영국군 청년 장교(크리스토퍼 존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데이빗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 등이 그런 작품들. ‘젊은 사자들’에서 독일군 장교(말론 브랜드)와 그가 점령한 파리의 자존심 강한 여인 프랑솨즈의 짧은 로맨스도 역시 적과의 사랑이요 트로이의 왕자 패리스는 라이벌 국가 그리스의 귀부인 헬렌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해 고국으로 도주했다가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기까지 했다.
그런데 적과의 동침 중 황당무계할 만큼 역설적인 것은 남편과 아내의 그것인 듯하다. 얼마 전 한국 TV에서 부부들에게 그들의 관계를 묻는 프로를 봤다. 한 젊은 부인은 남편을 바라보면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훌쩍이는 반면 나이 먹은 부부들은 대부분 할 수 없어 살지요라며 무덤덤한 표정들이었다. 어떤 부인은 남편이 원수라는가 하면 또 다른 부인은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같이 안 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기도 한다. 그러니까 많은 부부들이 적과 동침하는 셈이다. 아들 딸 낳고 수십년간 함께 살아온 부부생활의 황폐한 종말을 보는 것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원수를 사랑하다 절대적 비극을 맞은 두 틴에이저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영화와 오페라 등으로도 만들어진 이 두 철없는 러브 버드의 이야기는 베를리오즈의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에서 아주 곱게 묘사되고 있다(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연주 CD가 최근 Deutsche Grammophon서 나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얘기를 많이 닮은 오페라가 지금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서 공연 중인 도니제티의 ‘라메르모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다. 집안의 원수 에드가르도를 사랑하는 루치아가 오빠의 간계로 정략결혼을 했다가 첫날 밤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고 미쳐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사진)로 유명한 작품이다. 미쳐 죽은 루치아 곁에서 에드가르도도 칼로 자살, 적은 하늘 나라에서 동침하게 됐다.
이번 공연은 ‘다음 칼라스’라고 불리는 러시아 키로프 오페라의 빅 스타 리릭 소프라노 아나 누트레브코(32)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다. 꾀꼬리 같은 음성이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콜로라투라로서는 음폭이 무척 넓고 깊었다.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 그리고 완벽한 테크닉을 겸비한 광채 나는 음색이 황홀했다. 아나 누트레브코(Auna Netrebko)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 데뷔 CD가 역시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나왔다. ‘루치아’는 오는 20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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