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생 때 서울 광화문 소방서 건너편에 있던 지하 음악다방 여심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남은 마음’이라는 다방 이름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다방 DJ가 틀어주던 음악이었다.
특히 나는 다방에 들를 때면 DJ에게 컨트리 가수 단 깁슨이 징징 울면서 부르는 ‘시 오브 하트브레이크’(Sea of Heartbreak)를 자주 신청해 듣곤 했다. 이 노래는 지금도 내가 애착하는 곡으로 난 옛날부터 컨트리 송을 좋아했다. 북가주 팔로알토에 사는 나의 미국 친구 탐은 컨트리 송을 약간 천한 것으로 여기지만 난 그 노래들의 소박한 내용과 금방 가까워질 수 있는 멜로디를 좋아한다. 이름 그대로 시골 풍이어서 새 노래를 들어도 격의가 없다.
내가 지금도 애청하는 가수들인 레이 찰스, 짐 리브스, 바비 다린, 마티 로빈스, 바비 베어, 자니 캐시, 팻시 클라인, 패티 페이지 및 브렌다 리 등은 모두 컨트리 가수이거나 컨트리풍의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이다. 컨트리 송은 90년대 들어 온갖 장르를 짬뽕, 젊은 록 뮤직 팬들을 사로잡으며 지금까지 팝 차트를 주름잡고 있다. 가스 브룩스, 트리샤 이어우드, 클린트 블랙, 리바 매킨타이어 같은 컨트리 가수들의 인기는 록 스타 못지 않다.
깁슨이 지난 17일 내슈빌서 75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이 무척 쓸쓸했다. 나는 그의 ‘시 오브 하트브레이크’ 외에도 ‘오 론섬 미’(Oh Lonesome Me)와 ‘저스트 원 타임’(Just One Time)을 좋아해 가사까지 외워 부르며 여심에 들를 때마다 이 노래들을 번갈아 가며 신청해 듣곤 했었다. 이 노래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깁슨의 노래들은 거의 모두 고독과 상심, 상실과 낙담을 가슴이 찢어지도록 한탄하고 있다.
음… 하며 속에 덩어리가 된 슬픔을 토해내지 못하는 신음으로 시작되는 ‘시 오브 하트브레이크’는 깁슨이 1958년에 불렀는데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면서 님의 품에 다시 한번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울고 부는 노래다. 나는 어떻게 해서 당신을 잃었을까/내가 어디서 잘 못했을까/왜 당신은 날 떠나서/나로 하여금 영원히 상심의 바다를 항해하게 하는가/와서 날 구해 주오/여기 있는 내게로 와주오/날 가져다 간직해 주오/상심의 바다에서 멀리 떠나서. 사정사정 하지만 한번간 님이 돌아오겠는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 노래와 함께 ‘오 론섬 미’와 ‘저스트 원 타임’을 다시 들으니 흘러간 과거가 고독의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깁슨의 친구로 유명한 컨트리 가수인 멀 해가드는 그의 노래는 자신의 삶의 얘기이며 그는 생전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깁슨은 타고난 고독자였던 것 같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음악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깁슨은 평생을 고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았다. 고독과 우울은 그의 노래의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이 때문에 술과 약물을 남용하기도 했다.
싱어 송 라이터인 깁슨은 생애 모두 350여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노래들은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 팻시 클라인 등 많은 유명 가수들이 즐겨 불렀다. 깁슨이 작곡해 자기보다 다른 가수가 불러 전 세계의 히트곡이 된 노래가 ‘아이 캔트 스탑 러빙 유’(I Can’t Stop Loving You)와 ‘스윗 드림스’다(Sweet Dreams)다. ‘아이 캔트 스탑 러빙 유’는 역시 나의 애청곡인데 1962년 맹인 가수 레이 찰스가 불러 공전의 빅히트를 했다.
나는 님을 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그러니 나는 그저 어제의 꿈속에서 살아가리다. 실연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듣노라면 가슴에서 눈물이 흐른다. 1956년에 작곡된 ‘스윗 드림스’는 깁슨의 첫 히트곡이기도 한데 그가 노래한지 얼마 후 컨트리 여가수 팻시 클라인이 불러 빅히트했다. 이 노래는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클라인의 간판곡이 되었는데 그녀가 심장의 피를 토해내듯 절규하는 노래를 들으면 몸에 한기가 돌 지경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두 노래는 깁슨이 할부금을 못내 TV와 진공 청소기를 빼앗긴 후 단숨에 작곡했다고 한다.
’오 론섬 미’와 ‘저스트 원 타임’도 모두 떠나간 님을 못 잊어 부르는 노래들. 깁슨은 아-오라며 늙은 고양이가 내지르는 게으른 비명 같은 소리를 내다가 또 아이 아이 아이하며 가슴앓이를 한다. 고독과 상실의 소리가 긴 한숨의 궤적을 그린다.
박 흥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