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전부터 너무나 매스컴의 각광을 받아 자기 자랑이 심하다는 생각부터 갖게 했던 LA 필의 공식 연주회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지난주 사흘간 호화 파티와 함께 특별 연주회로 개관을 자축한 디즈니 홀은 그동안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와 함께 음향시설이 불량한 디즈니 홀 건너편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을 사용해 온 LA 필의 새 집이다. 디즈니 홀은 빌바오 뮤지엄을 지은 앤젤리노 프랭크 게리와 도쿄 선토리 홀의 음향시설을 장치한 야수히사 도요타의 외형미와 음향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미디어는 아예 디즈니 홀이 음향의 열반이라고까지 추켜세우고 있으나 그것은 이제 막 태어난 인간 아기보고 허큘리스라고 평가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LA의 자랑거리가 될 디즈니 홀은 지난 1~2년간 전미국에서 교향악단들이 심한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거나 파산위기에 처해온 비음악적 상황에서 개관, 그만큼 더 낭보로 여겨진다. 이 사이 123년 역사의 샌호제 교향악단과 플로리다 필이 문을 닫았고 심지어 미 최고의 교향악단들인 클리블랜드,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및 시카고 교향악단 등도 적자에 연주자들의 봉급을 깎고 베니핏을 줄이고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시카고 리릭 오페라 등은 스폰서를 못 구해 오랫동안 실시해온 라디오 방송을 중단했다. 경제난으로 교향악단들의 살림을 크게 돕던 기업체 및 개인의 기부금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LA 필도 심하지는 않으나 아직은 적자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디즈니 홀 건설과 함께 입장권 정기 구매자가 대폭 늘었고 오는 11월과 12월에 연주될 베토벤의 ‘운명’과 ‘합창’교향곡의 일부 연주는 이미 매진됐다.
디즈니 홀의 소리를 들으려고 지난 화요일 연주회에 참석했다. 로비의 조명은 어두운 반면 연주회장 내 조명은 밝았는데 이 홀을 지을 때 특히 신경을 썼다는 무대와 객석 그리고 객석과 객석간의 근접감이 오케스트라와 관객을 한 동아리로 묶어 놓는다.
그런데 디즈니 홀의 객석 수는 챈들러 파빌리언의 그것보다 930석이 준 2,265석으로 근접감을 위한 좌석배치 때문에 객석과 객석 사이의 공간이 몹시 좁았다.
이 날의 프로그램을 무도 18세기 작품인 모차르트의 ‘아다지오와 푸가’ C단조와 ‘주피터’ 교향곡 그리고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연주는 영국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가 했고 지휘와 피아노 독주는 이 악단의 수석 개원지휘자인 머리 페라이아(사진)가 했다.
나는 무대 바로 왼쪽 오케스트라석의 무대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앉았는데 바순과 오보와 클라리넷 연주자들의 입술 놀림과 피아노를 치는 페라이아의 손가락 동작마저 명확히 시야에 들어왔다. 아 이런 게 근접감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오케스트라와 나와의 교신을 즐겼다.
이 날 내가 특히 즐긴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나는 이 음악을 대학생 시절 유엔군의 소리방송을 통해 반복해 나오는 스비아토슬라브 릭터의 연주로 듣고 좋아하게 됐다. 우아하고 서정적인 모차르트적인 것과 괄괄한 베토벤적인 것이 혼성된 곡으로 특히 론도의 제3악장이 장난치듯 즐겁다. 음악을 잘 해석한 페라이아의 연주와 기교가 능숙했다. 객석을 거의 가득 메운 청중들이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고 악장이 끝나면 합창하듯 일제히 기침하는 것은 챈들러 파빌리언 때와 마찬가지.
그러면 과연 이 날 디즈니 홀의 소리는 어떠했는가. 뉴욕타임스의 음악평론가 앤소니 토아시니의 옛 장소에 비해 소리가 매우 감동적으로 좋아했으나 그렇다고 매력적으로 황홀하다고까지 는 할 수 없다는 말로 나의 답을 대신한다. 소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새 홀의 총체적 음의 질량을 십분 감각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생명체인 소리가 새 장소에 적응하고 또 청중이 그 소리에 익숙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 건물의 나무와 유리와 쇠도 역시 소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LA타임스의 음악평론가 바크 스웨드의 말처럼 귀만이 아니라 눈과 피부의 모든 기공을 통해 소리가 들어오는 느낌을 경험하기 위해 내일 말러의 ‘부활’ 교향곡을 들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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