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진 오펜하이머 회장 집에서 열린 올 들어 두번째의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모임은 잭 발렌티 미영화협회(MPAA) 회장을 성토하는 열기로 화끈하게 달아올랐었다. 우리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발렌티를 비판하고 조소한 까닭은 MPAA가 수상 시즌을 맞아 매년 실시해 오던 오스카 회원들에 대한 비디오나 DVD 발송을 중단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 스크리너라 불리는 이들 비디오나 DVD는 메이저 인디 등 할리웃의 모든 영화사들이 수상 투표용으로 자사 영화들을 오스카 회원들에게 발송, 지금까지 회원들은 극장이 아닌 집에서도 영화를 보고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렌티가 지난 9월30일 이것들이 해적판 제작에 사용된다면서 발송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
스크리너는 오스카 회원들뿐 아니라 배우, 각본가 및 감독 등 각 분야별 노조회원들과 전미국의 유력한 비평가협회 회원들에게도 배포돼 왔다. 스크리너의 발송 금지는 이들 모든 단체에도 적용이 되는데 이 때문에 지금 할리웃은 발렌티를 성토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영화란 극장에서 봐야 하는 것이지만 연말 수상시즌이 되면 너무나 많은 크고 작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물리적으로 이것들을 다 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반 관객이야 제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면 되지만 오스카 회원이나 비평가들은 그럴 수도 없는 입장.
LA를 비롯한 전미 대도시의 비평가협회 경우 매년 연말이면 그 해의 각 부문 베스트를 뽑고 또 비평가들 개인별로 베스트 텐을 뽑는데 이때 없어서는 안될 것이 이 스크리너다.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와 어쩌다 시사회를 놓친 영화 그리고 연말이 다 돼 개봉되는 영화를 보려면 스크리너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다.
발렌티의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은 인디(독립) 영화들이다. 메이저의 대작들과 달리 저예산으로 만든 예술 영화들인 이들은 몇 개의 극장에서만 상영돼 6,000명에 이르는 오스카 회원들이 못 보고 지나가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폭스 서치라이트, 포커스, 소니 클래식, 미라맥스 및 뉴라인 등 주요 인디들은 모두 메이저의 자회사여서 이번 발렌티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발렌티가 메이저의 앞잡이로 인디들(엄격히 따지면 독립도 아니지만) 영화를 죽이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디 작품들이 최근 들어 오스카상의 많은 부분을 휩쓸어 가면서 체면과 막대한 수입을 잃은 7대 메이저들이 발렌티를 앞세워 상과 돈을 독식하려 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스크리너 없이는 자사 영화들이 상 받을 기회는 전무하다고 아우성인데 오스카상을 받은 ‘피아니스트’와 ‘그녀에게 말해’ 같은 영화들은 스크리너가 없었더라면 상을 타기가 불가능했을 영화들.
한때 존슨의 보좌관으로 1966년부터 MPAA 회장을 지내온 발렌티(사진)는 그동안 메이저의 이익 대변자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조치도 실은 WB와 FOX가 강력히 추진했고 발렌티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제작의 발표자로 나섰을 뿐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분석이다.
우리 협회는 이날 회의에서 스크리너를 받는 저널리스트들을 해적판 제작의 공모자처럼 취급한 MPAA의 조치에 항의하는 서한을 즉석에서 작성했다. 그리고 힘을 보여 주자는 뜻에서 매년 거행하던 최우수 작품과 인물들 선정을 취소키로 결정했다. 우리는 매년 12월 중순에 한해 베스트를 뽑아 다음해 1월에 시상만찬을 열어왔다.
우리 협회의 이런 결정이 있은 후 전미 방송영화비평가협회, 전미 영화비평가협회 및 뉴욕 영화비평가서클 등도 모종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평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스크리너 발송 금지조치에 반대하는 까닭은 이 조치로 큰 피해를 입을 예술영화들 때문. 이 조치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13세’ ‘아메리칸 스플렌더’ ‘수영장’ ‘도쿄에서의 방황’ 및 ‘21&그램’ 같은 영화들은 오스카 등 각 길드의 사상에서 명함도 못 내밀 것이 십상. 대신 탐 크루즈 주연의 ‘마지막 사무라이’와 러셀 크로우 주연의 ‘매스터와 코맨더’ 같은 영화들이 큰 덕을 볼 것이다.
한편 오스카 회원 및 각계에서 항의가 빗발치자 MPAA는 뒤늦게 오스카 회원들에게만 암호를 넣은 비디오를 발송키로 했다. 그러나 배우노조 등이 이에 강력 반발, 스크리너 발송 금지를 둘러싼 할리웃 집안 싸움은 갈수록 꼴불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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