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81세로 사망한 찰스 브론슨은 생김새 때문에 처음에는 건달과 깡패 또는 광인이나 갱스터 등으로 많이 나왔다. 단단한 체구에 오랜 풍상에 절은 고목껍질 같은 얼굴 그리고 곁눈질을 하는 가느다란 눈을 한 그를 보면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브론슨의 이런 고약한 인상이 먹혀들어 호평을 받으며 그를 무명의 구덩이로부터 건져내 준 영화가 B무비 ‘기관총 켈리’(Machine Gun Kelly·1958)다. 그는 여기서 실제로 악명 높았던 갱스터 켈리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했었다. 내가 브론슨을 처음 본 것도 이 영화에서인데 고등학생 때 조선호텔 앞에 있던 경남극장서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 참 인상 고약하네”라고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브론슨은 1960년대 말 유럽서 먼저 선풍적 인기를 얻은 뒤 그 인기를 업고 할리웃의 스타가 된 배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황야의 무법자’로 유럽서 스타가 돼 조국으로 금의환향한 것과 비슷하다. 그는 유럽으로 가기 이전에 ‘황야의 7인’과 ‘대탈주’ 및 ‘더티 더즌’ 등 일련의 앙상블 캐스트 영화에서 눈에 띄는 조연을 했지만 그 뒤로 그 이상의 역이 주어지지 않았다.
40대 말년의 브론슨이 유럽서 처음 광을 낸 영화가 알랑 들롱과 나온 갱영화 ‘잘 가거라 친구야’(1968)다. 미남 들롱과 추남 브론슨이 짝을 이뤄 강도질을 하는데 기막힌 콤비였다. 나는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브론슨을 유럽의 탑 스타로 올려놓은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대하 스파게티 웨스턴 ‘옛날 옛적 서부에’(One Upon a Time in the West·1968)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론슨의 영화도 이 것인데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악한으로 나와 맨 마지막에 복수의 집념에 사로잡힌 브론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첫 장면이 기막히게 멋있다. 허허벌판에 달랑 혼자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브론슨과 그를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10리는 떨어져서 잡더니(사진) 갑자기 4인의 얼굴을 클로스업으로 떠올린다. 대형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히 점령한 브론슨의 두 눈이 마치 산사자의 그것처럼 매섭다. 제이슨 로바즈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으로 하모니카 음악이 멋있다.
브론슨은 이들 영화의 빅히트로 유럽 최고의 배우가 됐다. 이탈리아에서는 ‘못생긴 자’로 프랑스에서는 ‘신성한 괴물’로 불리면서 남성들에게는 과묵한 터프 가이요 여성들에게는 섹스 심벌로 사랑을 받았다.
브론슨이 할리웃으로 돌아와 비로소 처음으로 빅 히트한 영화가 폭력을 조장하는 비도덕적 내용 때문에 비평가들의 질타를 받은 ‘데스 위시’(1974)다. 뉴욕에 거주하는 평범한 남자가 아내와 딸이 무뢰한들에 의해 살해되고 겁탈 당하자 법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복수하는 내용.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와 일맥상통하는데 1편이 크게 성공하면서 무려 4편의 속편이 나왔지만 모두 정크다.
찰스 브론슨의 본명은 찰스 부치스키. 리투아니아 태생의 광부 아버지와 슬라브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5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펜실베니아의 탄광촌 에렌필드에서 출생해 성장, 16세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지하 광부로 일하며 가족 생계를 도왔다. 브론슨은 존 스터지스 감독의 전쟁영화 ‘대탈주’(1963)에서 독일군에 붙잡힌 미군으로 탈출용 지하 터널을 파는 폐소공포증자인 ‘터널 왕’으로 나온다. 그의 과거 탄광부 경력을 생각하면 묘한 일치다.
브론슨은 이 영화를 과거 서독서 찍을 때 두번째 부인인 영국 여배우 질 아이얼랜드를 만났다. 당시 질은 브론슨과 영화에서 공연한 데이빗 배컬럼의 아내였다. 그런데 아이얼랜드는 자신이 유산을 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과 함께 병 문안을 온 브론슨을 보고 사랑하게 돼 남편과 헤어지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미녀와 야수’의 결합인데 아이얼랜드는 후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야만적이요 원시적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브론슨과 아이얼랜드는 모두 11편에서 공연했는데 이이얼랜드는 연기보다는 미모가 훨씬 두드러진 배우였다. 이이얼랜드는 1990년 유방암으로 54세로 사망했다.
감독 존 휴스턴이 “핀이 뽑혀진 수류탄 같은 남자”라고 말한 브론슨은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 ‘더티 더즌’에서 공연한 리 마빈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그렇게 강철같던 사나이들이 세월을 못 견디어 세상을 떠났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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