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의 유혹에 견디지 못하는 버릇은 아담과 이브 때부터 시작됐다. 아담이 이브가 건네준 선악과를 먹는 바람에 그의 후손들인 모든 남자가 평생 땀을 흘려야 먹고살게 됐다. 말하자면 남자의 고생은 여자 때문에 시작된 셈.
그러나 아담들이 이브의 유혹을 탓할 수만은 없다. 아담은 파멸의 결과를 알고도 죄를 지었기 때문인데 여인의 유혹이란 그만큼 달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브의 유혹을 몸에 장신구처럼 걸고 다니는 여자를 요부라 하겠는데 요부 중에서도 요부가 필름 느와르에 나오는 치명적 여인(femme fatale)들이다.
그녀들의 유혹은 너무나 감각적이어서 사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그것의 독성에 마비되고 결국 폐인이 되거나 황천으로 가고 만다.
‘죽어도 좋은’ 여인들의 대표적 인물이 할리웃의 ‘사랑의 여신’이라 불렸던 빨강머리의 리타 헤이워드였다. 영화 ‘쇼솅크 리뎀션’을 보면 무기수 모간 프리만이 애지중지하는 포스터가 있다. 리타의 이미지를 고정시켜 놓은 영화 ‘길다’의 포스터다. 이 영화의 원작인 스티븐 킹의 단편 이름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솅크 리뎀션.’
흑백 필름 느와르 ‘길다’(1946)는 남미의 카시노 주인과 그의 요염한 아내 그리고 이 여인의 전 애인(글렌 포드)이 삼각관계를 엮는 범죄영화다. 어깨가 드러난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은 길다가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을 천천히 벗으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사진)을 보노라면 입안의 침이 다 마를 정도다.
온 몸을 천천히 비비 꼬아가며 ‘풋 더 블레임 온 메임’을 노래하는 길다로부터 관능미의 즙이 흘러나온다. 모간 프리만과 동료 죄수들이 동경과 경이의 눈으로 옥중 관람하는 영화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장면 하나로 ‘섹스의 여신’의 이미지가 굳혀진 리타는 이 이미지를 벗으려고 애를 썼으나 그녀는 죽고 난 지금까지도 길다로 기억되고 있다. 리타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길다와 사랑에 빠졌다가 나와 함께 깨어난다”고 말했다.
스페인 댄서인 아버지와 역시 댄서인 어머니를 둔 리타의 본명은 마그리타 카르멘 칸시노. 13세 때부터 클럽에서 춤추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는데 춤 실력이 대단해 ‘유 워 네버 러블리어’와 ‘커버 걸’(Cover Girl·1944-최근 DVD로 출시) 등 여러 편의 뮤지컬에 나왔다
‘길다’만큼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리타의 자태는 라이프지 표지에 실렸던 네글리제 차림의 모습. 위험할 만큼 자극적인 리타의 이 사진은 2차대전 때 군인들의 핀-업 걸로 큰 인기를 모았고 비키니원폭 실험 때 폭탄에 붙여지기도 했다. 이 사진을 본 할리웃의 귀재 오손 웰스가 “나 저 여자와 결혼할 거야”라고 다짐, 둘은 마침내 부부가 됐다.
그러나 몬로와 아서 밀러의 그것처럼 미와 두뇌의 결합이라는 말을 들은 리타와 웰스의 결혼은 얼마 못 가 파탄이 났다. 웰스가 감독하고 리타와 공연한 멋진 필름 느와르 ‘샹하이에서 온 여인’(1948)은 둘이 별거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리타의 여러 남편 중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유럽의 모슬렘 지도자 아가 칸 왕자. 리타는 그와의 결혼생활을 위해 할리웃을 떠났고 딸 야스민까지 낳았으나 이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다. 리타는 그 후 할리웃에 복귀했으나 ‘사랑의 여신’ 시절의 인기를 회복치는 못했고 그로부터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
사랑과 결혼을 분주하게 습관처럼 한 리타는 섹스 심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매우 사적이고 수줍은 사람이었다. 남자 복이 무척 없던 여자였는데 그의 전속회사 컬럼비아의 독재가 해리 콘 사장과 여러 남편 등 모든 남자들에 의해 이용당한 불행한 여인이었다.
내가 처음 리타에게 혼은 빼앗겼던 영화는 꼬마 때 본 ‘살로메’(1953). 새빨간 머리(원래는 흑발)의 약간 싸구려 얼굴을 한 그녀가 헤롯왕 앞에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며 추던 ‘일곱 베일의 춤‘은 나를 황홀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었다. 죽어도 좋을 만한 여자라는 걸 그 뒤에 알았다. 리타는 알콜 중독과 알츠하이머병으로 1987년 69세로 사망했다.
케이블-TV TCM은 9월9일 하오 8시 기록영화 ‘리타’(Rita)에 이어 ‘길다’를 방영한다(이 두 영화는 9월4일 하오 7시30분부터 이집션 극장에서 먼저 상영한다. 323-466-FILM). TCM은 ‘길다’에 이어 ‘샹하이에서 온 여인’, ‘따로 떨어진 테이블’등 리타의 영화 4편을 계속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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