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X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다. 곰은 미련해 제몫을 못 챙긴다는 말인데 사실 곰은 매우 영특하다고 한다. 거대한 체구에 벌어진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입을 헤벌쭉하니 벌리고 웃는 액션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56)를 보면 재주 부리는 곰 생각이 나곤 한다.
그런데 ‘아-널드’(그의 액센트를 흉내낸 발음)는 덩치도 곰 같지만 똑똑한 것도 곰 닮았다. 화면에 나와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는 이 자칭 평화주의자는 굉장히 장사 속이 밝고 실제적이며 또 자기선전에 능한 야심가이다.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오스트리아 태생인 슈워제네거는 유럽서 미스터 유니버스대회를 두 차례나 석권한 뒤 1968년 21세 때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처음에는 바디 빌더로서의 육체미를 밑천으로 매스컴과 스크린을 서서히 점령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공부, 후에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 거부가 되었다. 당초 골수 보수파였던 슈워제네거가 민주당의 아성인 케네디 가문의 유명 인사인 마리아 슈라이버를 아내로 삼은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액센트가 심한 외국 태생의 바디 빌더에서 할리웃의 빅 스타가 된 뒤 이제는 웬만한 나라보다 더 큰 캘리포니아의 주지사로까지 출마한 슈워제네거야말로 실현된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거이다. 본명보다 로보트 킬러인 터미네이터(사진)로 더 잘 알려진 슈워제네거는 연기는 볼품 없는 철두철미한 액션 스타다. 현재 상영중인 ‘T3’가 예상보다 흥행이 부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액션 스타로서의 생명은 긴급 수혈을 받아야 할 처지. 오랜 전부터 정치적 야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이번 주지사 선거 출마는 그런 면에서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하겠다.
슈워제네거는 2002년에 가주 지사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으나 연예전문 월간지 프리미어의 폭로기사 때문에 포기했었다. 이 잡지는 슈워제네거가 여자 주무르기를 떡 주무르듯 하고 혼외정사도 하는 자라고 보도, 큰 화제가 됐었다.
슈워제네거는 그때처럼 지금 온갖 미디어로부터 자질 문제 때문에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레슬링 선수로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됐다가 정치에 넌덜머리를 내고 그 뒤로 손을 뗀 제시 벤투라의 말처럼 ‘잔인한’ 매스컴은 지금 슈워제네거의 자질 문제를 놓고 비판과 비난과 조롱을 서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가 지망생으로서의 그에 대해 아는 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온건 보수파로 프로초이스와 총기규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 외에 정치 경력이 전무한 슈워제네거의 자세한 정견은 수수께끼. 게다가 선거가 후보등록 불과 한달 뒤 실시돼 후보들에 대한 검증시간이 너무 짧은 점도 유권자들에게 악조건이다. 만약 “당선되면 주청사에 들어가 싹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한 슈워제네거가 당선되면 가주 주민들은 진짜로 속을 알 수 없는 터미네이터 지사를 두게 될지도 모른다.
슈워제네거는 후보등록 후 가주의 문제들인 직업창출과 적자해소 및 망가진 공교육 등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고 또 인터뷰 요청도 일체 거절, 공염불 같은 리더십 외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래서 그가 순전히 스타라면 사족을 못쓰는 가주 주민들의 성향을 노리고 이 서커스 쇼 닮은 인기투표에 나왔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과연 이번 선거는 버라이어티 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별의 별 사람들이 후보로 나왔다. 왕년의 인기 TV시리즈 ‘디프런트 스트로크스’에서 아놀드로 나온 신장 4피트8인치의 흑인 배우 게리 콜맨, 막 파산신청을 한 도색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으로 하반신 불구인 래리 플린트, 선셋 거리의 대형간판에서 자주 보는 젖가슴이 초대형 수박 만한 광고모델 앤젤린 및 수모선수와 100세 난 할머니까지 각양각색이다. 변덕이 심하고 괴퍅스러운 가주 주민들 성질을 잘 보여주는 듯해 재미있다.
배우와 정치가란 모두 쇼맨으로 남의 인식에 기대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한 통속이다. 슈워제네거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같은 업종을 놓고 가게만 바꾸는 셈이다. 영화에서 터미네이터가 한 말 “아스타 라 비스타”(나중에 보자구)가 실제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박흥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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