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배고픈 것을 술로 달래다가 요절하는 것이 화가라면 이탈리아 태생으로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사진)야 말로 이 같은 틀에 딱 들어앉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고개를 한쪽으로 삐딱하니 누인 인물 초상화로 잘 알려진 모딜리아니의 삶은 한편의 멜로드라마였다. 미술학자들은 모딜리아니의 전설처럼 된 멜로드라마 같은 삶 때문에 그의 진지한 예술적 가치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아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절세 미남이요 지적이었던 모딜리아니는 22세 때인 1906년 파리로 와 죽을 때까지 몽파르나스에서 그림을 그린 아방 가르드의 기수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몽파르나스는 피카소, 수틴, 샤갈 및 리베라 같은 외국 태생의 전위파 화가들의 활동 근거지였다.
긴 목과 둥근 어깨 그리고 편도 모양의 눈을 한 고독한 모습의 인물화와 드러누운 육감적인 여인들의 나체화를 많이 그린 모딜리아니는 생전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다. 그는 밥 대신 술과 약물에 빠져 살았는데 그의 애주론이 그럴 듯하다.
모딜리아니의 삶을 그린 자크 베케 감독의 1958년작 프랑스 영화 ‘몽파르나스 19’(Montparnasse 19)에서 모딜리아니로 나온 절세 미남 배우 제라르 필립은 이렇게 말한다. “고흐는 작년에 본 노란색을 다시 찾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다”면서 “나는 눈부시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우리나라 화가 오원 장승업도 술고래였던 것을 보면 예술가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모딜리아니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죽음을 부추긴 것은 이 술과 약물이었다. 그런데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이틀 뒤 그의 아기를 임신한 연인 잔 에뷔테른(영화에선 아눅 에메가 이 역을 맡았다)은 5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모딜리아니는 여복이 많아 끊임없이 사랑을 했는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세 여인 중 둘은 자살하고 하나는 폐병으로 일찍 죽었다. 이런 일들이 모딜리아니의 삶을 대중에게 크게 어필시키는 구실을 했는데 그래서 모딜리아니는 미술계에서보다 대중으로부터 더욱 사랑 받는 사람으로 취급돼 왔다.
LA 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모딜리아니와 몽파르나스의 미술가들’ 전시회를 찾아가 봤다(전시회는 9월28일까지 계속된다). 그의 초상화들을 보면서 느낀 젊은 ‘길다’는 것이었다. 긴 얼굴과 긴 목이 둥그런 어깨에 이어 긴 몸으로 이어지면서 기형적인 균형미를 유지하고 있다.
인물들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 보니 많은 눈들이 눈동자가 없다. 공허를 지나 영원을 응시하는 죽은 자들의 눈과 같이 으스스한 신비감을 쏟아낸다. 모딜리아니의 삶이 그래서일까 그림 속 사람들이 슬프고 고독하게 느껴져 보는 사람마저 춥게 만든다.
그런데 초상화의 모델이 된 사람의 사진 속 얼굴과 화폭 속 얼굴의 모습이 전연 다르다. 한 모델의 말처럼 모딜리아니는 대상의 영혼을 해부해 캔버스에 옮겼던 것 같다. 모딜리아니와 교류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요 영화인이었던 장 콕토는 짝 눈을 했다. 한 쪽 눈은 감고 다른 쪽 눈은 떴는데 모딜리아니는 뜬 눈으로는 바깥 세상을 보고 감은 눈으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의 벌거벗은 여인들은 몹시 아름답고 관능적이다. 긴 여자가 꿈을 꾸듯 눈을 감고 길게 드러누워 자신의 커브와 함께 패인 곳과 두드러진 곳을 해방감에 젖어 드러내 보이고 있다. 풍만한 젖가슴의 오렌지빛 젖꼭지가 곱기도 한데 모딜리아니의 벗은 여인들은 욕망의 훌륭한 대상이다. 전시회에는 모딜리아니의 그림과 데생 및 조각 등 50여점과 그와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 22점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LA타임스의 미술비평 기자는 “모딜리아니의 그림보다 옆의 동료들의 것이 더 낫다”고 했지만 나 같은 보통 관람객이 만난 모딜리아니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한편 뮤지엄은 모딜리아니와 함께 모스크바 푸쉬킨미술관에 소장된 프랑스 화단의 대가들의 작품 76점도 따로 전시하고 있다. 피카소, 고흐, 마티스, 세잔, 푸상, 코로, 밀레, 쿠르베, 르느와르, 모네, 피사로, 드가, 마네, 툴루즈-로트렉 및 고갱 등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 중 52점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되는 것이다. 전시회는 10월13일까지 계속된다.
박흥진<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